이달 들어 통신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계통신비 인하 논의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기본료 폐지 등 가계통신비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재인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이하 국정기획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일 미래창조과학부를 압박했고 미래부는 통신사와 국정기획위 사이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미래부 업무보고. /사진=뉴시스 DB

◆국정기획위-미래부 ‘옥신각신’
논쟁의 시작은 이랬다. 국정기획위는 지난달 25일 미래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미래부는 기본료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설명했다가 국정기획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날 국정기획위는 미래부에 “성의있는 통신비 인하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달 1일과 6일 있었던 업무보고에서 미래부는 국정기획위에 “통신비 인하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이에 지난 7일 국정기획위는 내부회의를 거쳐 “미래부의 업무보고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날 국정기획위는 “10일까지 성의있는 방안을 도출해내라”며 미래부를 압박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국정기획위와 미래부가 서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당초 10일 전후로 매듭지어질 전망이던 가계통신비 인하 논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


논쟁을 둘러싼 당사자 간의 입장차이도 점입가경이다. 사용자·이통사·알뜰폰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입장을 내세우며 한치의 물러섬 없는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양보 없는 이해관계자들

국정기획위는 가계통신비 인하에 ‘목을 맨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집요하게 매달린다. 통신비 인하는 문 대통령의 공약집 중에서도 최상단을 차지한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약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언한 문 대통령이기에 국정기획위는 통신비 인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정기획위는 논란의 중심인 기본료 폐지에 특히 완강한 입장을 보인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는 “처음보다 미래부의 안이 진전됐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며 “조만간 4번째 보고를 추가로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정기획위에 맞서는 이통 3사도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이통 3사는 5G통신망과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며 통신비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통신비를 인하할 경우 5G통신에 필요한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할 재원이 한계에 다다라 5G와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통 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7000억원 수준.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기본료 1만1000원을 폐지할 경우 이통 3사의 실적은 약 7조5000억원이 감소해 3조8000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적자규모가 최대 5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를 강행하면 재원마련이 시급한 이통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입원을 찾을 수 밖에 없다”며 “현재 소비자가 받고 있는 무제한 요금제 등 다른 혜택이 축소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2G·3G의 기본료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알뜰폰(MVNO)업체도 기본료를 비롯한 통신비 인하 결사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위적인 시장개입보다 알뜰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알뜰폰협회는 이통 3사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알뜰폰사업자들의 연 매출이 최소 3840억원(46%)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내놨다. 또 협회는 직접 종사자 3000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협회는 이날 ▲LTE 도매대가 조정 ▲도매대가 회선 기본료 폐지 ▲전파사용료 면제 ▲분리공시제 도입 ▲알뜰폰사업자 지위 법제화 등의 대안을 요구했다. 협회 한 관계자는 “올해를 흑자전환의 원년으로 삼고 경쟁력 강화에 나섰는데 정작 새정부는 기본료 폐지에 나서 풍전등화 신세”라며 “알뜰폰협회가 언급한 대책이 실현될 경우 LTE서비스를 이통 3사 대비 40%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공염불될까

통신비 인하 논란은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통신비 20% 인하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반값통신비’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각각 기본료 1000원과 20% 선택 약정할인 도입에 그쳤다.

이렇듯 통신비는 역대 모든 정부에서 논란의 중심이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기본료가 3000원 인하된 것을 시작으로, 16대 대선을 거치면서 통신비는 또 4000원이 깎였다. 17대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기본료 1만1000원이 됐다.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잡음이 현 정부의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이번 정부에서도 통신비 인하가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계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국정기획위의 단호한 입장에도 결말은 이전 정부의 행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전문가는 “2G, 3G가입자든 LTE가입자든 요금 인하 혜택을 볼 것”이라며 “다만 혜택의 크기가 과거 정부보다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누구나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의 역할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지 시장원리를 파괴하면서까지 가격을 허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