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택배업계 2위 자리를 두고 펼쳐지는 업체 간 치열한 신경전이 흥미롭다. 올 초 롯데그룹으로 인수되며 관심을 끈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가 한진해운 파산의 충격에서 벗어난 한진을 바짝 추격해 근소하나마 실적을 기록한 것. 두 회사의 올 상반기 매출은 롯데 2871억원, 한진 2872억원으로 격차가 1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선두는 단연 CJ대한통운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히 투자해 효율을 높인 결과 2위권과의 격차가 더 커졌다. 올 상반기 매출 9462억원, 국내점유율은 44%에 달해 사실상 시장을 과점한 상태다. 올 들어 회사 영문명을 ‘CJ 코리아익스프레스’에서 ‘CJ 로지스틱스’로 바꾸고 해외시장에도 눈독을 들이며 본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이어왔다.


수년째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온 CJ대한통운과 달리 나머지 업체들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타이밍을 놓쳤다. 나아가 쿠팡처럼 새로운 형태로 기존업계에 위협을 가하는 기업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는 데다 국내 진출한 DHL·페덱스·UPS 등 해외특송업체의 세력확장도 대비해야 한다. 크지 않은 파이를 두고 사활을 건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롯데마트 물류센터.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2위 자리가 탐난다
현재 우리나라 택배의 약 90%는 계약물량이다. 이른바 기업택배 물량인데 대부분 일정한 수량이 정해져 있어서 설비투자 또한 일정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업체를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업계는 현 상황이 하루아침에 뒤집히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수년간 이어온 구도가 더 단단히 굳었을 뿐이라는 평.

하지만 격차의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선두업체와 격차가 벌어지고 하위권에서 격차가 줄어들면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며 업체 간 출혈경쟁이 벌어지면 단가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올 초 롯데그룹에 편입된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어마어마한 유통망을 갖춘 롯데그룹과의 시너지 효과와 그룹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까지는 다소 차분한 분위기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올해 말까지 400억원을 들여 인프라를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올 연말쯤에는 인천공항에 ‘직구’(직접구매)와 ‘역직구’(해외소비자가 국내 쇼핑몰에서 직접구매) 수요를 대비한 통합물류센터가 완공된다. 현재 하루 30만건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지만 시설이 늘어나면 하루 60만건 처리가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수도권과 지방의 물류센터를 보강하면서 ‘롯데택배’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집중할 방침이다.

물류업계에서는 롯데그룹과의 시너지효과를 2위 자리 안착과 앞으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요소로 꼽았다. 이에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올해는 브랜드가 바뀐 첫 해라 개선하고 수정할 점이 많았다”면서 “앞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점차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진 동남권 택배 허브터미널. /사진제공=한진

한진은 지난해 한진해운의 아픔을 상당부분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동화설비 등 40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이어가며 본격화될 싸움에 대비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인수한 대전화물터미널을 ‘메가허브터미널’로 키울 방침이다. 시설이 확충되면 현재 하루 30만박스 수준인 처리물량이 2021년 100만박스 수준으로 늘어난다.
한진 관계자는 “허브터미널은 물론 그 아래 보조시설에도 자동화설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늘어나는 물량에 맞춰 시설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천 컨테이너터미널은 핵심시설 설치를 마쳤고 11월에 완전개장해 앞으로 매출을 높이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노리는 글로벌 특송업체
이런 가운데 국내 택배시장에서 해외 글로벌 특송업체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도 주목된다. 해외 특송업체들은 인천공항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짓고 지역거점을 확보하는가 하면 이동식 서비스센터로 접근성을 높였다. 나아가 업체들의 수출입상담까지 도우며 빠르게 성장하는 온라인소매시장을 노리는 중이다.

UPS는 아시아지역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우리나라 수입화물 운송서비스 품질을 높일 계획이다. 화물 픽업시간을 단축했고 당산동 서비스센터를 독산동으로 이전, 화물 접수 마감시간을 연장했다. 페덱스는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판매를 돕기 위해 특송, 물류, 규제, 통관 등 여러 분야에서 컨설팅을 강화한다. 업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냈다는 평. DHL도 국내 최초로 배송차에서 직접 발송물 접수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첨단 운송차 ‘DHL모바일 서비스 스테이션’을 도입했다. 특수운송차가 돌아다니며 물건을 픽업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단축한다.

이처럼 글로벌 특송업체들이 국내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건 아시아지역의 온라인거래가 빠르게 성장한 데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직구·역직구시장이 급속도로 커져서다. 상품 외에 각종 서류의 배송도 함께 늘어났다.

이에 국내 택배회사들은 “영역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해외업체들은 나라 간 배송과 특수물품의 빠른 배송에 강점을 보일 뿐 일반적인 택배와는 거리가 있어 큰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다. 


당장은 이들의 주장처럼 해외업체가 국내시장을 집어삼키긴 어렵다. 하지만 압도적인 자본력을 앞세운다면 고정 수요를 확보하는 건 시간문제고 과감한 인프라 투자까지 더해지면 시장재편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국내 물류업체 관계자는 “국내업체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택배 유통망을 흡수한다면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모를 일”이라며 “국내 택배업계는 비용을 줄이면서 택배단가를 올려야 하는 데다 대형업체들의 공격마저 대비해야 하는 이중고를 떠안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