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제(36)는 최근 주목받는 뮤직비디오 아티스트다. 올 들어서는 보아의 ‘CAMO’와 빅스의 ‘도원경’ 등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맡아 감각적이고 새로운 영상을 선보였다. 그가 만드는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다른 취미는 없어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ETUI 작업실에서 만난 김우제는 세련된 영상과 달리 수더분한 모습이었다.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어쩐지 맥이 없어 보였지만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눈이 반짝였다.
그는 간밤에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샜다고 한다. 그의 일과 대부분이 그렇다.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할애하거나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며 지낸다.
“시간이 나면 하루 종일 유튜브나 비메오(Vimeo) 등의 채널로 다양한 영상을 찾아 봅니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제가 하는 일 말고는 다른 것에 별 관심이 없어요. 대신 일에 대한 욕심이 큰 편이에요. 시도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심심할 겨를이 없습니다.”
뮤직비디오 디렉팅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만 이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광고와 뮤직비디오, 패션필름 등을 제작하고 다양한 분야의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 작업도 한다. 최근에는 모 회사 TV제품의 인도시장 광고를 작업하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미국 뉴욕에서다. 국내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던 그는 2006년 뉴욕으로 떠났다. 군대에 있으면서 영상아트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고 담당 교수가 뉴욕 유학 당시 했던 작업들을 보고 무작정 유학을 결심했다. 뉴욕 아트스쿨 포트폴리오데이에서 면접을 보고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 후 한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때마침 국내 대형기획사인 JYP가 뉴욕에서 현지 직원을 채용했고 미디어팀 아트디렉터로 지원해 일하게 됐다.
JYP에서의 일은 즐거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갈증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주말마다 자신의 작업을 별도로 진행했다. 그럴수록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4년여간 근무한 뒤 회사를 나왔다.
◆ 뮤직비디오 감독이 된 이유
자유의 몸이 된 그는 하고 싶은 일에 매진했다. 패션잡지에 실릴
“FEEL IT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데 한국 돈으로 200만원 남짓 들었어요. 끼 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이 함께 해줘 가능했죠. 외골수 기질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회사 일을 해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K팝 뮤직비디오를 처음 맡게 된 것은 전 원더걸스 멤버인 예은의 싱글앨범이었다. JYP에서 일할 당시 인연이 있었는데 그의 활동을 눈여겨보던 JYP 측에서 오퍼가 왔다. 이후 다양한 K팝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했다.
뮤직비디오 디렉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샤이니의 ‘Tell me what to do’였다. 비가 많이 내려 촬영이 고역이었다.
“물웅덩이가 생겨 촬영장소에 차량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스탭의 지인을 통해 포크레인을 동원하고 갖은 일을 다해 촬영했어요. 그런데 결론적으론 비가 내리고 물안개가 껴 전체적인 무드가 더 잘 나왔어요.(웃음)”
◆ '21세기 나비파'를 꿈꾸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꼭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어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앞으로도 시도하고 싶은 게 많아요.”
김우제의 첫인상은 진취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의 작업에 대해선 굉장한 욕심을 보였다. 뮤직비디오는 사실 그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다. 사진은 물론 모든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때로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도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이 만든 인디영화
영화 제목에 들어간 'Les Nabis'(레 나비)란 말은 이른바 ‘나비파’라고 불리는 1800년대 후반의 프랑스 예술가 그룹을 말한다. 이들의 활동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속한 아트 콜렉티브 ‘ETUI’의 성격도 이와 연결고리가 있다.
“레 나비의 예술사조적 의미나 그들의 작품 경향에 대한 동경은 아니에요. 단지 각기 다른 사람이 모여 각자 혹은 함께 작업을 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행동방식이 맘에 들었어요. 하고 싶은 작업들이 너무 많은데 다 할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