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 위원장. /자료사진=뉴시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과거사 사건 처리와 관련해 '백지구형' 관행을 재검토하라고 법무부와 검찰에 권고했다. 또 평검사의 이의제기권 행사 및 처리 절차에 대한 명문규정을 조속히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법무 검찰개혁위는 29일 이같은 내용의 제4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개혁위는 "피고의 무죄가 명백한 경우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야 하고,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자제해야 한다. 이미 항고한 경우에는 이를 취하해 재심재판을 통해 진실을 조속히 확정하도록 협력하라"고 권고했다.

개혁위는 재심 무죄판결에 대한 기계적인 상소 자제도 요구했다. 이미 제기한 상소 역시 취하하고, 위헌이 확인된 법령 피해자 중 재심청구를 하지 않은 이를 위해 비상상고를 하는 등 관행이 아니라 진실에 부합하는 권리구제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것도 요구했다.


개혁위는 검찰의 '백지구형' 관행도 철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지구형은 과거사 사건에서 무죄임이 명백할 경우에도 검사가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해 주기 바란다'고 구형하는 것을 말한다. 개혁위는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공소와 관련해 피고인 및 재판 관련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객관의무 역시 부담하는 만큼 무죄구형이 아닌 백지구형은 잘못된 조치"라고 지적했다.

개혁위는 또 평검사의 이의제기권 행사 및 처리 절차에 대한 명문규정을 조속히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개혁위는 "검찰청법상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의제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규정을 조속히 제정․운용하고, 이 절차에는 이의제기 처리절차의 문서화, 공정한 심사위원회의 구성, 검사의 진술기회의 보장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개혁위는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한 임은정 검사에 대해 내려진 불이익 조치를 철회할 것도 별도 권고했다. 임 검사는 지난 2012년 박형규 목사 등 긴급조치 위반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명령을 받았다. 이에 이의제기권을 행사했지만 당시 검찰 상급자가 이를 묵살하고 사건 배당을 바꾸려했다. 임 검사는 이를 부당한 지시로 판단해 재판에 출석한 뒤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일로 임 검사는 2013년 2월 정직 4개월 중징계를 받았고, 서울중앙지검에선 3년을 근무한다는 인사 원칙이 있음에도 징계를 이유로 발령 1년 만에 창원지검으로 전보 조치됐다. 임 검사는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내 1심, 2심 모두 승소했다. 법무부는 2014년 상고해 현재까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개혁위는 "이 사건은 검찰이 적법하게 무죄구형을 하려던 임 검사에 대해 백지구형을 강요하고, 이의제기권을 묵살한 채 검사의 공판 관여를 봉쇄하며 그에 불복한 것에 대해 중징계처분을 내린 것이다. 검사 개인에 대한 불이익처분임에 그치지 아니하고, 종래 검찰권 행사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설명했다.

개혁위는 법무부에 임 검사에 대한 상고를 취하하고, 임 검사가 입은 피해 회복을 위해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