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이 중단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사진=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조선업의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졌지만 국내 조선 빅3는 여전히 불황형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매출과 순이익 규모가 급감하는 가운데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등 허리띠를 졸라매 만들어낸 흑자다. 수주가뭄은 조금씩 해갈될 조짐이 보이지만 일감은 여전히 보릿고개다. 


◆ ‘불황형 흑자’ 내년까지 지속
현대중공업그룹이 최근 발표한 계열사 3분기 잠정실적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3분기 연결기준 3조8044억원의 매출을 올려 93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7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은 의미가 깊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동기대비 각각 27.3%, 20.8% 감소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의 주된 원인은 조선부문의 매출 하락이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연결기준 조선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동기(1473억원) 대비 약 42% 줄어든 860억원이었다. 특히 현대미포조선과 삼호중공업 등을 제외한 별도기준 조선부문 실적은 47억원 적자였다.


삼성중공업도 현대중공업과 비슷한 양상의 ‘불황형 흑자’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 2778억원의 매출을 올려 84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이보다 71.9% 줄어든 236억원에 그쳤다.

최근 증권거래가 재개된 대우조선해양은 3분기 20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채권단 출자전환과 자금수혈로 재무구조 개선이 실시돼 전년동기 대비로는 흑자전환 했지만 직전분기에 비하면 영업이익이 68.9% 급감했다.

문제는 당장 4분기와 내년 상반기까지 보릿고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선업의 특성상 신규 수주는 1년 반~2년이 지나야 실제 일감에 영향을 준다. 2015~2016년 수주가뭄이 극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내년 하반기가 돼야 조금씩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부문 인력 600여명을 순환휴직시키고 있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도 유급휴직을 실시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초부터 급여반납 및 사무직 대상 순환 무급휴직이 진행 중이며 삼성중공업 역시 유휴인력 순환휴직을 놓고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는 모두 올해 말 연간 기준으로 흑자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비용절감을 통해 만들어낸 흑자라서 일감부족 상황이 지속되면 견디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진해 STX조선 해양 조선소. /사진=임한별 기자

◆ 글로벌 업황개선은 희망적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 하반기 쯤이면 일감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최근 2019~2020년 납기인 상선을 다수 수주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도크가 빈 상황이 지속되겠지만 하반기부터는 도크 가동률이 올라간다.

신규수주 가능성도 커졌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IR에서 내년 수주 목표치를 올해(75억원)보다 25억달러 이상 높은 100억달러 이상으로 설정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수주목표 상향계획은 글로벌 조선업계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외 조선해운업계는 2019년 이후 전세계 발주물량이 지속 상승세를 그리며 조선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지난 9월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각 업체의 수주잔량이 직전달보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업황이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클락슨은 지난 3월 834척으로 예상했던 올해 발주 물량을 이 보고서에서 890척으로 상향했다. 내년 발주 예상 물량도 당초 1065척으로 전망했다가 1134척으로 늘려 잡았다.

연관산업인 해운업 시황이 개선되며 선박 발주가 늘어나는 데다 국제유가 상승기조에 정유업체들이 해양플랜트 발주 재개를 검토하는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0억달러에 그쳤던 해양 프로젝트 발주는 올해 90억달러로 회복되고 내년에는 16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상승기조에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이 저유가로 보류했던 해양플랜트 발주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며 “기술적 우위를 가진 우리나라 업체들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말했다.

◆ 존폐기로 놓인 중견업체들

빅3의 경우 보릿고개를 넘기면 희망이 보이는 상황이지만 중견업체들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실사를 받고 있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 그리고 최근 매각을 추진키로 한 대선조선의 운명은 업계 초유의 관심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 7월 각각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실사를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결과 발표는 지연되고 있다. 당초 두달여가 소요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달 중순쯤에야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만약 실사 결과 독자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회사는 청산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선 두 회사의 합병설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STX조선과 성동조선 모두 1년 이상 장기간 수주 공백으로 일감 부족을 겪고 있으며 은행권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이 막혀 신규수주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선조선 매각 역시 쉽지 않다. 채권단의 채무면제로 당기순익은 흑자를 기록 중이지만 아직 영업에서 이익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원매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08년 27개에 달하던 중소·중견 조선사가 장기불황 끝에 5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무조건 청산하기보다는 경쟁력있는 중견조선업체를 리빌딩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3호(2017년 1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