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초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저축은행이 가계대출 취급비중을 줄일 가능성도 높아졌다. 금융당국이 중금리 대출상품까지 가계대출 총량규제 대상으로 묶어둬서다. 이에 저축은행업계는 기업대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정책금융상품으로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는 저신용 서민층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서민금융회사 조이기’만으로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리, ‘저축은행=대부업’ 될까
현재 저축은행의 연평균 가계신용대출금리는 대부분 20% 이상이다. 지난달 말 기준 지주계열회사인 IBK(11.18%)·신한(14.05%)·하나(15.20%)·KB저축은행(15.75%)을 포함해 11개사의 연평균 대출금리만 20% 이하다.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 34개사 중 23개사(68%)가 연 20% 이상의 금리를 받는다.
이 중 대형업체의 연평균 가계신용대출금리는 이미 연 24% 이상이거나 이에 근접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업계 1·3·5위인 SBI·한국투자·JT친애저축은행이 취급한 가계신용대출 연평균 금리는 각각 22.54%, 21.64%, 21.59%다. 업계 2·4위인 OK(25.69%)·HK저축은행(24.67%)의 경우 이미 연 24% 이상이다. 업계 6·7위인 OSB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은 연평균 25.40%, 25.31%를 적용한다.
연평균 대출금리 24%에 주목하는 이유는 내년 2월8일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현행 연 27.9%에서 24%로 인하되기 때문이다. 현재 연평균 24% 이상의 금리로 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이 내년에도 지금처럼 대출영업에 나서면 적잖은 고객을 잃는다.
따라서 저신용 서민층 구제방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는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면 대부업권으로 가면 되지만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저축은행에서 탈락한 저신용자는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못 빌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의 대출금리 차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대부업체 대부분의 연평균 대출금리는 27% 이상이다. 사실상 법정 최고금리(27.9%) 수준이다. 연평균 26% 이상의 금리로 대출을 취급 중인 스타·세종·공평저축은행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대출금리 차이는 최소 1%포인트 이상이다. 하지만 내년 2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저축은행들은 대부업권과 비슷한 대출금리를 적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고금리가 떨어진 이후 많은 저축은행이 연평균 22.5~23.5%선에서 금리를 책정할 것”이라며 “연 23%의 대출금리만 적용해도 저축은행 건전성은 좋아진다. 수익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그 이하로 떨어뜨리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내년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저축은행에서 돈을 못 빌린 저신용 서민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가계대출 줄이고 기업대출 늘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취급비중은 앞으로 더 축소될 전망이다. 저축은행이 가계대출 총량규제 적용을 받아서다. 이렇게 되면 저신용자의 저축은행 이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연 24% 내외의 가계신용대출금리로 수익을 챙겨온 저축은행들은 대출사업 포트폴리오 변화가 불가피하다.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로 눈을 돌릴 것이란 얘기다.
이미 저축은행들은 가계신용대출을 줄이는 추세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초 발표한 ‘2017년 10월 중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올 1~10월 저축은행의 전년 동기대비 가계대출 증가액은 2조60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조8000억원)보다 31.6%(1조2000억원) 감소한 수치다.
특히 8등급 이하 서민층을 대상으로 대출문턱을 높였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의 소액신용대출액은 지난해 6월 1조1015억원에서 올 6월 9813억원으로 1년 새 10.9%(1203억원) 줄었다. 소액신용대출은 저축은행이 300만원 한도로 판매하는 대출상품이다. 8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주 고객층인데 올해 저축은행이 이들 서민층을 대상으로 지난해보다 10%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초 법정 최고금리가 연 34.9%에서 27.9%로 낮아진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출총량 규제의 영향이 크다”며 “저신용자 대상 대출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저축은행으로선 신용리스크를 떠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늘리는 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대출총량 규제는 지난해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을 올 상반기 5.1%, 하반기 5.4%로 제한하는 규제다. 금융당국은 지난 3월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가계대출을 줄이라고 주문하며 총량규제를 지시했다.
문제는 중금리대출도 대출총량 규제에 묶여 중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쉽게 늘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잇돌Ⅱ·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은 이 규제대상에서 빠졌지만 저축은행 자체 중금리상품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가계대출로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저축은행으로선 기업대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실제 저축은행은 올해 기업대출을 늘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중소기업대출액은 지난 8월 기준 26조5850억원으로 1년 전(21조9488억원)보다 21.12%(4조6362억원) 급증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내년엔 가계대출을 더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정 최고금리까지 인하되면 저축은행 탈락자들은 곧바로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당국이 정책금융상품 취급액을 늘린다는 방침이지만 지금처럼 서민금융회사를 조이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5호(2017년 1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