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국방력의 가늠자인 방위산업에 관심이 높아졌다. 문재인정부도 방위력개선 비용을 매년 1조원 이상 늘려 방위산업 육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머니S>가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현주소와 최신 트렌드를 살펴봤다. 또 국내 방산업체 현황과 세계시장에서 통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빅3 방산기업(한화·카이·LIG넥스원)을 집중 조명했다. 나아가 국민세금을 축내고 국방력을 깎아먹는 방산비리 사례와 이에 대한 해법도 함께 모색했다.<편집자주>


“최근 방산비리 문제가 심각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뭐냐”(백군기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글쎄요. 하도 많아서….”(장명진 전 방위사업청장)


2015년 9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오간 질의응답 내용이다. 방사청장의 이 같은 답변에 국감장에선 헛웃음이 나왔다. 앞서 같은해 6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선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방신비리를 가리켜 “생계형 비리”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전직 방사청장과 국방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국내 방산비리가 얼마나 횡행하는지, 또 이를 바라보는 군 최고관계자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보여준다. 방산비리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축내는 일인 동시에 국방정책을 뒤흔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끊어야 할 ‘적폐’로 꼽힌다. 국내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방산비리와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짚어봤다.

 

통영함(오른쪽), 광양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군피아’로 얼룩진 방위산업
우리나라의 역대 가장 큰 방산비리는 1993년에 밝혀진 ‘율곡비리’다. 율곡사업은 국군 무기 현대화사업으로 1974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매년 국방 예산의 30~40%를 들였던 대규모 방산사업이다. 올해 국방 예산(40조3000억원) 기준으로 보면 매년 12조~16조원이 한 사업에 투입된 셈이다.

이 사업의 비리가 세상에 밝혀진 건 1993년이다. 그해에도 율곡사업에 당시 국방 예산의 32%인 2조9000여억원이 쓰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이 율곡사업에 주목했고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무기체계 선정·도입 과정에서 11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특히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군 최고관계자들이 방산업체와 무기 중개업체로부터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았다.


1996년 밝혀진 ‘린다 김 사건’도 국내 방산비리의 대표적인 사례다. 김영삼정부는 2200억원을 들여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인 ‘백두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E-시스템사가 우리나라 국방부에 무기를 팔기 위해 린다 김을 고용했고 이 회사는 다른 업체보다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검찰 수사 결과 린다 김은 이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군 기밀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상에 밝혀진 ‘통영함 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방신비리 사건이다. 통영함은 천안함 사건 발생 후 제작된 전문 구조함으로 1590억원을 들여 2012년 진수됐다. 당시 군 당국은 ‘국내 기술로 만든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때 통영함은 출동하지 못했다. 해군이 통영함의 선체 고정 음파탐지기 등에 문제가 있다며 그간 통영함 인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결과 통영함의 음파탐지기는 1970년대 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방사청은 2억원짜리 음파탐지기를 41억원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군피아’(군대+마피아)로 인한 대규모 무기도입 비리 외에 군 병사들이 쓰는 보급품 납품 과정에서도 비리가 꾸준히 적발됐다. 2010년엔 밑창이 떨어지는 신형 군용전투화가, 2015년엔 ‘뚫리는 방탄복’이 보급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 관련 연구위원은 “언론에 보도가 안됐을 뿐 군수품 보급 담당 실무자들 사이에 비리는 빈번히 일어난다”고 말했다.



◆구조적 문제, 원인과 해법
문제는 이 같은 방산비리가 제도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방산비리를 단순한 개인적 일탈로 봐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방부도 올 초 방산비리 발생 근본원인에 대해 ▲방산업무의 폐쇄성(정보 독점) ▲사업담당자의 전문성 결여 ▲비용절감에 치중하는 사업계약 방식 ▲비리자 처벌수준 미약 등 4가지를 들었다.

특히 새로운 무기 도입 시 정보 독점으로 인한 비리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세금이 들어가지만 폐쇄 일변도의 사업 진행방식 때문에 정보가 집중되는 군 고위 관계자를 중심으로 비리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윤상용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은 “무기로 어떤 전략을 세우는지는 당연히 안보사항”이라며 “하지만 무기 도입에 대해선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사업진행 시 투명성을 확보해야 무기에 대한 검증도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무기 소요 단계에서부터 정보를 공개해 방산업체와 거래한다”고 설명했다.

비리자 처벌이 미약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이진규 전 대령은 올 초 발간한 <국민이 명령한다 국방을 개혁하라>를 통해 방산비리를 처벌하는 법규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산비리는) 국가를 좀먹는 중대범죄임에도 방산비리에 관련되면 관례적으로 업무상의 단순비리나 실수에 관한 법조항을 적용해 고작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했다”며 “또 방산비리를 기소하는 군 검사가 죄를 저지른 현역군인을 제 식구로 인식해 법 적용을 느슨하게 하는 것도 문제를 키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방산의 ‘부실’과 비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06년 방사청 개청 멤버였던 정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건국대학교 방위사업학과 초빙교수)는 방산의 부실을 비리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방산이 부실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1990년대에 발생한 비리와 현재 비리엔 차이가 있다. 과거엔 해외무기 도입 과정에서 군피아들의 비리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무현정부 때 방사청을 신설했으나 이명박정부가 방위산업에 시장경제논리를 갖다 댔다”며 “방위산업은 연구개발(R&D) 단계에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오로지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부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무기체계 R&D단계에 엄격한 경쟁원리가 도입된 2009년 이후 무리한 ROC(무기운용 요구사항)와 시험평가 기준으로 실패한 사업이 속출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무기체계 개발이 실패로 돌아가면 정부는 각종 시행착오의 비용을 업체에 전가시킨다. 삼성, 두산,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방위산업을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자주국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전작권(전시작전권) 회수와 국내 방산업체의 보호육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국내 방산업체에서 제도적 원인으로 일부 부실이 발생하면 정부는 해외 무기를 도입하려 한다. 자주국방과 국내 방위산업 발전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7호(2017년 12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