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며 국민들은 잠시나마 일상생활을 잊고 경기 속에 자신을 담는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4년간의 노력을 알기에 국민들은 경기를 보면서 희노애락을 겪는다.
‘전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 특성상 하계올림픽에 비해 종목이 제한적인 동계올림픽인 만큼 국민들은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가급적 21세기 이후 일어난 사건 중에서 국민을 울고 웃게 했던, 아직도 생생한 사건 3가지를 꼽아봤다.
‘전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 특성상 하계올림픽에 비해 종목이 제한적인 동계올림픽인 만큼 국민들은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가급적 21세기 이후 일어난 사건 중에서 국민을 울고 웃게 했던, 아직도 생생한 사건 3가지를 꼽아봤다.
김동성(오른쪽)과 안톤 오노가 인터뷰한 모습./사진=뉴스1
◆오노 '헐리웃 액션'에 금메달 뺏긴 김동성
한국 국민에게 가장 유명한 사건을 꼽으라면 기자는 미국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미국)의 ‘헐리웃 액션’ 사건을 꼽겠다. 이 사건 이후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오노의 헐리웃액션' 세레모니를 할 만큼 국민에게 미친 영향력이 상당한 사건이었다.
오노 사건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발생했다.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김동성은 결승선까지 7바퀴 전부터 선두에서 여유롭게 1위로 통과했다. 전 대회 쇼트트랙 1000m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 대회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김동성의 금메달은 당연해 보였다.
문제는 경기가 끝나고 벌어졌다. 안톤 오노가 경기 중 김동성을 제치려다 손을 번쩍 든 것을 본 심판진이 김동성에게 실격 처분을 내렸고 금메달은 오노에게 돌아갔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는 울분을 토했고 시청하던 국민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하지만 김동성은 이후 2002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보란 듯이 일명 ‘분노의 질주’를 펼쳐 자존심을 회복했다. 오노는 대회에 참여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1등으로 들어온 김동성은 2위를 기록한 선수와 한바퀴 반이라는 어마어마한 실력차이를 보여줬다.
김연아 선수./사진=뉴시스
◆김연아, 피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피겨여왕’ 김연아는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이다.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인 한국에서 당당히 세계 최정상에 군림한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까지 정복하면서 여자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기 때문에 피겨 여왕에 걸맞은 의미 있는 경기였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는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역대 최고인 150.06점을 받아 합계 점수에서도 역시 세계기록인 228.5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007 테마에 맞춰 ‘본드걸’을 연기한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은 피겨 역사에서도 길이 남을 명연기였다.
당시 김연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홈쇼핑MD가 한 방송을 통해 김연아 선수 때문에 그날 홈쇼핑 방송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중계 당시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는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시작된 직후 홈쇼핑 주문 전화 수가 0을 가리킨 것을 보고 시스템 오류가 난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4년 김연아는 은퇴했지만 평창올림픽을 맞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피겨여왕’ 김연아의 사진을 홈페이지 가장 앞에 게재하며 그의 발자취를 재조명할 만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김연아를 기억하고 있다.
한편 김연아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자신의 마지막 선수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하려했지만 홈그라운드 이점을 이용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김연아가 소트니코바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 세계 피겨인의 의견이다.
이승훈 선수./사진=뉴시스
◆이승훈 아시아 최초 장거리 스케이팅 금메달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이승훈이 예상치 못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계올림픽의 마라톤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체력이 요하는 종목인 만큼 아시아선수에게는 전인미답의 종목이었다. 그러나 당당히 아시아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며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날 이승훈은 16명의 참가선수 중 반 데 키에프트 아르젠(네덜란드)과 짝을 이뤄 5조 인코스로 레이스에 나섰다. 초반부터 앞선 1위 기록자인 스베레 하우글리(노르웨이)의 기록을 앞당겨 나갔다. 그러더니 중반 이후에는 아르젠을 무려 반 바퀴 차로 따돌렸고, 마지막 바퀴에선 한바퀴 이상 앞서며 새로운 올림픽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종전 올림픽 기록은 12분58초92.
남은 선수들 중에는 마지막 주자인 스벤 크라머(네덜란드)가 이승훈을 넘어서는 괴력 같은 레이스를 펼쳤으나 인코스를 2번 달리는 실수를 범해 실격 당했고, 결국 이승훈은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1만m 출전이 세번째에 불과했던 데다 이전에 세웠던 기록으로는 메달권을 예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의 금메달은 전세계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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