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DB
왜 지금일까. 삼성전자의 깜짝 액면분할 카드에 재계와 증권가가 들썩인다.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분할 카드는 오래전부터 예견돼왔던 시나리오다. 삼성전자 주식 액면분할설이 불거질 때 마다 회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펴왔다. 지난해 3월 말 권오현 전 부회장은 서초 사옥에서 열린 ‘제2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액면분할은 주주가치 제고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초지일관 액면분할설을 부인해왔던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최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50대1의 주식 액면분할을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나온 카드라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삼성전자 주가는 예상밖 호재에도 불구하고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하다 결국 제자리 뛰기에 그치는 모습이다.

◆아모레퍼시픽 등 액면분할 사례 찾아보니… 효과 ‘글쎄’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주당 액면가액을 5000원에서 100원으로 나누는 내용을 공시했다. 이에 따라 발행주식 총수는 보통주 기준 1억2838만6494주에서 64억1932만4700주로 늘어나고 현재 250만원 안팎을 오가는 삼성전자 주가는 5만원선으로 낮아진다.


발표 직후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간 횡보세를 보였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하루 동안 8% 이상 올랐다 떨어졌다.

그동안 시장에선 삼성전자 주당 가격이 너무 비싸 개인투자자가 매입하기에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액면분할로 더 많은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거래량이 늘고 주가 부양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과거사례를 살펴보면 액면분할이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아모레퍼시픽은 5000원인 액면가를 500원으로 쪼갰다. 380만원이 넘었던 주식을 38만원대로 낮춘 것이다.

주식 분할 직후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주가 역시 즉각 반응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두 달만에 45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45만원을 찍은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점차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사드(고고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시장 매출이 급감하면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주가는 30만원 수준이다.

앞서 2000년 액면분할 했던 SK텔레콤도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액면가를 5000원에서 500원으로 나눠 294만원이었던 주가를 29만 수준으로 낮췄다. 액면분할로 SK텔레콤 주가도 두 달 만에 37만원대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SK텔레콤의 현재 주가는 26만원대다.

이중호 KB증권 애널리스트는 "2000년 이후 667건의 액면분할 사례를 분석한 결과 평균적인 주가 흐름은 액면분할 공시 이후 상승하지만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평균적으로 공시일 당일에는 3.78% 상승했지만 60일을 전후로 주가는 다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액면분할이 긍정적인 주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액면분할로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액면분할 결정 발표로 개인투자자가 몰려 급상승했다가 기다렸다는 듯 외국인∙기관이 물량을 털어내면서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장 초반 상승세를 타다 결국엔 제자리걸음이다. 

◆미묘한 발표 시점…경영권 방어 목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발표 시점이 미묘하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오는 5일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깜짝 발표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이번 액면분할 결정 배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 결단’이 있었다. 지난해 말 이 부회장으로부터 실질적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받은 정현호 사장의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팀을 주축으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구속수감 상태에서 해당 내용을 보고받고 직접 최종승인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주주들의 간섭이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액면분할은 이 부회장의 지배구조 강화 측면에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간섭이 늘어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또 액면분할 뒤 주가가 치솟으면 경영권 승계 비용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액면분할을 결정한 이유는 뭘까. 우선 액면분할로 ‘황제주’ 자리를 내려놓고 ‘국민주’로 거듭나 일반 투자자들을 대거 끌어들여 삼성 ‘아군’으로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주식의 9.2%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등에서 임원 인사나 인수합병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곤 했다. 삼성전자가 주식을 액면분할해 고액 배당을 받는 우호적 소액주주 비중을 늘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경영 간섭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는 액면분할 발표 직후 외국인 기관이 쏟아낸 삼성전자 주식을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사들이고 있다는 점과도 맞물린다.  

이 같은 시각에 삼성전자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삼성전자 측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주식을 액명분할 해 유동성을 높이고 주식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이라면서 “액면분할은 비용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봐도 경영권 승계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데 이를 이 부회장 재판 시점과 연결 짓는 것은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오는 3월 23일 주주총회에 액면분할 관련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50분의 1로 나눠진 삼성전자 신주권 상장은 5월16일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