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최근 박성주씨(가명·43·남)는 어린이집으로부터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여름방학 기간동안 아이를 등원시킬지' 묻는 내용이었다. 바쁜 회사업무로 휴가조차 내기 힘든 박씨. 마음 같아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만 '다른 학부모들은 보내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측의 말에 결국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기로 했다. 7~8월만 되면 어린이집 여름방학이 시작돼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서러울 따름이다. 

#현직 어린이집 교사 이미연씨(가명)는 지난달 어린이집 교사의 방학기간을 늘려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등원 여부'를 물을 때 부모들에게 원성을 산다는 내용이다. 이씨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나 부모들 모두 난처한 것이 사실"이라며 "여름 휴가철이 되면 부모로부터 원성을 사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어린이집 방학시기를 자율화해서 부모들과 협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집 방학'을 놓고 학부모와 교사 간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7월 말부터 8월까지 여름휴가 시즌이 돌아오면 '등원여부 조사'를 통해 어린이집 방학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영유아보육법과 보건복지부 지침상 보육교사의 하계휴가 등을 이유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소위 말하는 방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 보육수요조사 등을 통해 등원을 원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통합보육을 실시하거나 보조교사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운영해야 한다. 단 한명이라도 등원을 희망하는 부모가 있을 경우 보육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정보육 수요조사, 사실상 '무의미'
/사진=이미지투데이

어린이집 가정보육 수요조사는 제대로 실시되고 있을까. 머니S가 2일 서울·경기 일대 어린이집 10곳을 취재한 결과 이번에 여름방학을 갖는 어린이집은 총 3곳이었다.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있냐'는 물음에 여름휴가가 있는 곳 모두 "원칙적으로 보육 수요조사를 통해 휴가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방학은 없지만 신학기 준비기간이 있는 곳도 있었고 소수의 아이를 위해 보육교사를 따로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원칙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어린이집 측의 입장에도 부모들의 불만은 큰 상태다. 조사가 형식상에 불과할 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방학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포털 맘카페의 한 회원은 "우리 (보육시설) 원장은 (등원)신청서를 보내면서 그때가 아니면 교사들 휴가를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며 "신청서는 보내지만 가정보육을 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회원은 "통합보육을 신청하면 '아 이 아이만 신청했네요'라면서 눈치를 준다"며 "보육시설을 3번이나 옮겼는데 모두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람은 "통합보육교육제도가 있긴 하지만 아무도 신청하지 않을 때가 많다"며 "통합보육을 하는 곳도 있고 일괄적으로 다 쉬는 어린이집도 있어 (해결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보육시설 측에서 등원여부를 조사할 때 '등원하겠다'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가정학습기간이라는 명목 아래 일년에 일주일가량 쉴 뿐 휴식이 없는 교사들을 생각한다면 학부모들은 '방학 등원여부'에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부모들은 보내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측의 말을 들으면 미안해서 아이 맡길 곳을 찾게 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 서울시 보육담당과 관계자는 "어린이집에서 방학을 핑계로 문을 닫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령 (원생) 20명 중 1명이라도 원생 학부모가 어린이집에 보내기를 희망한다면 어린이집은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했다. 또 "보육인원수에 따라서 어린이집이 운영되니 휴가계획 여부를 명확하게 통보하고 수요조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사도 누군가의 '부모'
/사진=이미지투데이

보육시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초·중학교 등은 여름·겨울방학이 합법적으로 명시돼있지만 유아교육기관인 어린이집은 휴가가 없다. 따로 연차가 없는 보육교사들도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내다. 

'어린이집에도 휴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맘카페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 이용자는 "극성수기인 방학 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다고 하면 교사들은 당직을 선다"며 "정말 이기적인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한 이용자는 "어린이집 교사도 사람이자 근로자"라며 "어린이집 휴가를 없애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머니S와의 전화통화에서 "(휴가시즌이 되면) 모든 어린이집은 방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보낸다"며 "방학기간 어린이집에 아이 보내기를 희망하는 부모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보육교사가 2명은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이와 관련 교사들의 불만글이 많은 상태다. 

본인을 어린이집 교사라고 소개한 한 청원 작성자는 지난달 22일 '어린이집 교사 연차를 보장하라'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작성자는 "보육교사들도 사람이고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라며 "유치원·학교는 방학해도 아무말 못하면서 왜 같은 유아교육기관인 어린이집은 3일도 맘 편히 못 쉬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작성자는 "어린이집을 믿지 못해서 둘째를 못 낳겠다고 하는 학부모들도 방학기간만 되면 예민해져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어린이집에)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보육교사는 지난달 20일 '어린이집 운영시간 및 보육교사 근무시간'이란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이 교사는 "어린이집 방학을 여름 1주일, 겨울 1주일로 공식화해달라"며 "어린이집은 1년365일 연중무휴. 보육교사도 연중무휴인 것이 맞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름 휴가기간이 한창인 8월. '초·중등교사 방학 폐지' 주장까지 나오면서 '어린이집 방학'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방학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과 '교사도 학부모'라는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가는 상황이어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미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