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삶이 팍팍해도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애완동물(Pet)과 경제(Economy)를 합친 '펫코노미'(Petconomy)가 소비문화로 자리잡았다. 머니S가 펫코노미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펫코노미 현주소] ③ 펫보험 가입, 왜 저조하나 

사진=뉴스1DB

#이미진씨(여·33)는 믹스견 강아지를 입양해 17년째 키우고 있는 반려견주다. 그녀는 요즘 반려견이 나이가 들면서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져 걱정이다. 이씨는 "노령견이 되니 각종 심장병에 구강질환까지 겹쳐 월 약값만 30만원이 든다"며 "가끔 검사를 받거나 1~2일 입원이라도 하면 병원비가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토로했다. 

국내 반려견은 혈통보전을 위한 근친교배도 있지만 공장에서의 무분별한 교배 등으로 믹스견도 많다. 하지만 믹스견의 경우 각종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 견주들은 늘 진료비로 고심한다.

대안으로는 펫보험이 있지만 견주들은 "무용지물"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국내 펫보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펫보험, '가입연령'의 모순


국내 펫보험시장은 연간보험료가 10억원 안팎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펫보험을 판매 중인 국내 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롯데손해보험)의 총 보유계약 건수는 2638건, 원수보험료는 9억8000만원에 불과했다.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는 부실한 보장내용 때문이다. 먼저 가입연령 제한이 높아 견주들은 불만을 쏟아낸다.

국내에서 펫보험을 판매 중인 3곳의 반려견 가입나이는 '삼성화재 파밀리아리스'가 만 6세 이하, 현대해상 아이에스피가 만 7세 이하, 롯데손보 하우머치마이펫보험이 7세다. 견주들은 반려견이 6세가 되는 해부터 질병에 시달리는데 이때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호소한다.


견주 서준규씨(30)는 "펫보험은 반려견이 비교적 건강한 시기에 보험가입이 가능하다"며 "진료비가 많이 나가기 시작하는 나이에는 보험가입이 어렵다. 반려견이 더 어릴 때 가입하라는 얘기인데 보험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펫보험상품의 보험료는 가입나이, 반려견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담보구성에 따라 보통 월 3만~5만원을 납부하며 연간 30만~60만원을 낸다. 펫보험은 1년 만기로 매년 갱신되며 만기시 환급금도 없다. 반려견의 나이가 들수록 보험료는 늘어난다. 20~30대 실손의료보험 보험료가 월 1만~2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금액이다.
만약 3세 때 가입해 6세까지 반려견이 별다른 질병에 걸리지 않고 타인에 대한 상해 등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면 3년간 100만원대 보험료를 환급없이 보험사에 납부하는 셈이다. 보험이 위험을 대비해 보험료를 내는 개념이지만 지출액이 너무 커 견주가 가입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견주는 반려견 나이를 실제보다 낮춰 펫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견질환(?) 슬개골 탈구, 보장 안돼

물론 펫보험 상품이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활용하면 진료비 혜택을 볼 수 있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펫보험의 경우 질병이나 상해당 100만원, 최대 500만원까지 보장한다. 보상범위는 삼성화재가 70%, 현대해상은 50·70·80% 중 선택할 수 있다. 롯데손보는 수술 1회당 150만원, 입원비 1일 10만원, 통원 1일 10만원 한도로 최대 740만원까지 보장하며 보상범위는 50·70% 중 선택 가능하다.

예컨대 질병에 걸려 진료비가 약 35만원이 청구됐다면 보상범위 70% 적용 시 24만원의 보험금을 받기 때문에 11만원의 진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펫보험 보험금의 경우 청구절차도 간편하고 심사도 까다롭지 않은 편으로 알려졌다. 또 반려견이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의 피해도 보상이 가능하다.

문제는 보장되는 질병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포메라니안이나 푸들처럼 한국에서 인기있는 견종들은 대부분 슬개골·고관절 탈구 등의 유전병을 앓는다. 하지만 펫보험 보장범위에는 유전병이 빠져있다. 특히 슬개골의 경우 소형견이 가장 많이 앓는 질병이지만 보험사들은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보장내용에서 이 질병을 뺐다.

최근 8세 푸들의 슬개골 탈구 수술로 200만원의 진료비를 지출한 견주 김정호씨(39)는 "슬개골 탈구는 당연히 보장내역에 있을 줄 알았다"며 "슬개골 탈구를 자주 앓는 믹스견의 특성을 감안해 탈구 관련 보장을 펫보험 담보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펫보험상품의 경우 슬개골 탈구를 비롯해 임신, 출산, 건강검진, 예방접종, 치아스케일링, 사망 등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반려견이 자주 앓는 질병 등 일반적인 진료에 대해서는 보장을 제외해 견주들은 펫보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상황이다.

견주 박보영씨(여·29)는 "견주들이 진정 원하는 보험은 펫보험이 아니라 진료비를 보장하는 펫의료보험"이라며 "일반적인 진료도 보장해주는 보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중런닝머신를 이용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반려견./사진=뉴스1DB

이에 대해 펫보험 판매사 중 한곳은 "일반진료항목을 보장하면 손해율이 치솟아 보험상품 유지가 힘들다"며 "질병별 특약 구성을 확대해 보장범위를 늘려야 하지만 이마저도 손해율 때문에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천차만별 진료비, "차라리 적금들겠다"
펫보험과 함께 동물진료비 문제도 지적됐다. 병원별로 진료비 차이가 크고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반려견·반려묘의 예방접종과 검사비, 중성화 수술비, 치석 제거비 등은 병원에 따라 최대 9배까지 차이가 난다.

치아스케일링의 경우 동네 소형동물병원이 18만원, 강북 도심에 위치한 동물병원이 28만원, 강남에 위치한 동물병원이 42만원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엑스레이나 피검사, 수술비 등도 병원별로 차이가 컸다.

견주 이지성씨(여·34)는 "병원별 진료비 차이가 커 보험가입 후 비싼 병원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저렴한 병원을 찾아 진료받는 것이 더 낫다"며 "견주들 사이에서는 매달 보험료를 내는 대신 차라리 그 돈을 모아 진료비에 보태는 것이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꼬집었다.

펫보험시장이 워낙 작아 보험사들이 상품개발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NH농협손보와 한화손보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펫보험 상품이 5개로 늘었지만 여전히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판매 보험사들도 시장이 정체되자 상품개발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정부와 보험업계는 펫보험시장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보험개발원은 최근 펫보험의 참조순보험요율 산출을 완료했다. 이 요율은 보험사가 상품을 개발하고 보험료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준이다. 산출 결과 월 2만원 정도를 내면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수술 받을 때 15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상품 개발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제대로 된 상품요율이 없어 펫보험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온 중소형보험사 입장에서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부도 지난 5월 전문보험사 설립 규제 완화의 뜻을 밝히며 펫보험시장 발전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보험료 부담이 큰 견주들도 다양한 회사의 상품이 출시되면 저렴한 보험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보험사끼리의 경쟁도 견주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다.

특히 한화손보는 최근 가입연령을 만 10세로 확대하고 슬개골 탈구 보장 등을 포함한 모바일용 '펫플러스보험'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보험사들이 시장공략을 위해 일반 진료항목을 대거 포함한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펫보험은 견주들의 가입수요가 있지만 진료비 보장문제로 발전이 더뎌왔다"며 "전문보험사의 출연이나 기존보험사의 펫보험 보장범위 확대로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스레 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펫코노미 현주소] 시리즈 
① "나는 굶어도 우리 아이는 개린이집 보내야죠"
② [르포] "우리도 먹고 살아야죠"… 파리 날리는 보신탕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