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10년 전쯤 공학박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업계 사람이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후 사회적인 여러 문제 때문에 상용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 최초로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차 ‘제로셔틀’이 지난 9월4일 판교 제2테크노밸리 입구부터 신분당선 판교역까지 5.5㎞ 구간 일반도로에서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제로셔틀은 11인승 미니버스 형태로 핸들, 엑셀, 브레이크, 와이퍼 등 수동운행에 필요한 장치가 없는 무인주행 전기자동차(EV)다.

제로셔틀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연구개발을 총괄했으며 KT(통신기술), 만도(차량·센서기술), 대창모터스(차체), 언맨드솔루션(자율주행솔루션), 넥스리얼(영상분석), 네이버랩스(자율주행용 정밀지도), 서돌전자통신(V2X시스템) 등 여러 기업이 기술력을 제공했다.


핀란드는 헬싱키에 자율주행셔틀 전용노선을 신설하고 2016년에 운행을 시작했으며 프랑스는 파리와 노르망디에서 지난해부터 자율주행셔틀을 실험 운행 중이다. 구글은 자율주행셔틀을 2020년까지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제로셔틀은 V2X(Vehicle to Everything)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최초 자율주행차다. 차량사물통신기술인 V2X를 구축함으로써 통합관제센터와 교통신호정보, GPS 위치보정정보신호, 주행안전정보 등을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따라서 통제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량보다 안전하다.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자율주행 실증실험을 위한 도로가 조성되고 있다. 도로에 첨단센서와 통신시설이 구축되면 관제센터와 제로셔틀에 도로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이로써 도로 내 장애물과 횡단보도 내 사람의 움직임이 파악된다. 2016년 7월에 자율주행 실증단지로 지정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는 10여개의 관련기업이 입주할 예정으로 국내 최대의 자율주행 생태계가 조성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의 등장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제2회 판교 자율주행 모터쇼’(PAMS 2018)에서는 대학생 자동차 융합기술 경진대회, 초중고 학생들이 레고를 이용해 자율주행차 만드는 경진대회, 국제포럼, 자율주행 기술혁신 어워드 시상, 자율주행 자동차 시연, 자율주행 이야기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자율주행차 vs 인간 미션 수행’ 이벤트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인간이 도로주행 장애물 회피와 주차 등 동일 과제를 수행하는 경쟁이 이뤄졌다. 또 ‘자율주행 싱크로나이즈드 드라이빙’ 이벤트에서는 두대의 무인 자동차가 똑같은 코스를 주행하면서 싱크로나이즈드 선수들이 물속에서 한몸처럼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행사 기간 중 열린 산업전시회에서는 차량 감지 센서와 자율주행차 전용 모니터, 3D 내비게이션, 초소형 전기차, 안전주행 장치 등 관련 기업이 30여개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앞으로도 PAMS가 해마다 열려서 세계 자율주행시장을 선도하는 행사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자율주행기술은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서 레벨0부터 레벨5까지 총 6단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제로셔틀은 자율주행 상용화를 뜻하는 레벨5의 전 단계인 레벨4 수준이다. ▲0단계는 운전자가 직접 운전하는 기존 자동차 레벨 ▲1단계에서는 가속, 조타, 제동 등 특정 기능 하나만 자동화된 단계 ▲2단계는 복수의 자동화 기능이 작동되지만 운전자의 감시와 조작이 필요한 단계 ▲3단계는 가속, 조타, 제동 등 모두 자동으로 수행되지만 운전자는 운전대와 페달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제한적 자율운행단계 ▲4단계는 교통신호와 도로 상태에 따라 스스로 자율주행하며 운전자는 독서나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만 개입이 필요한 단계 ▲5단계는 자동차가 알아서 운전하는 완전 자율주행 상태를 말한다.

이달 말 경기도 화성시 '자율주행실증도시'(K시티) 준공식에서는 전자, 자동차, 통신 등 산업별 국내 대표 기업들이 기술을 협력해 5G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인다. 삼성전자는 3.5㎓ 대역 5G 네트워크 장비, 현대차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기술, KT는 5G 통신망 구축을 담당한다.

K시티는 2016년부터 정부가 110억원을 투입해 만드는 32만㎡ 규모의 자율주행차 시험장으로 미국 미시간대가 조성한 M시티(13만㎡)의 2.5배에 달한다. K시티에는 시내횡단보도, 주차장, 고속도로요금소 등 여러 시설을 갖춰 도시 도로의 실제 상황과 비슷한 환경에서 실험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차 ‘제로셔틀’ 시범운행.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새로 생기는 일자리들

완전 무인으로 운행되는 자율주행차를 바라보고 시승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19세기 말에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삼륜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만든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의 부인 베르타 벤츠가 아들과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다 모 여관에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한 사람이 “이제는 마차를 끄는 말은 죽여 없애도 되겠네”라고 말하자 다른 모든 사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마차에 필요한 재료와 공구 등을 만들고 마차를 끌던 사람들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인 자율주행차를 보면서 기존 자동차의 제조에 관련된 일, 차를 운전하고 수리하는 등 서비스하는 사람들은 직업을 잃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돼도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자율주행차에 관련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스스로 능력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남편이 엔진을 개발할 때 조수처럼 일한 베르타 벤츠는 자동차가 고장나도 직접 고칠 수 있었기 때문에 먼 길을 가는 모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미난 사실은 벤츠 부인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역사상 최초의 교통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만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고 공공도로는 달려서는 안된다는 법이 있었다. 주행속도는 상당히 낮은 속도로(시가지 5.6㎞, 넓은 직선도로 11.3㎞)로 제한됐다. 법 규정으로 자동차를 처음 개발한 독일보다 프랑스에서 자동차산업이 앞섰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독일이 아닌 프랑스에서 1888년에 먼저 판매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도 프랑스 파리 경찰이 1893년 3월에 실시한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에밀 르바소였다. 자율주행차도 대중적으로 실용화되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경찰은 자율주행차량 상용화를 위해 도로교통법 전면개정에 착수했다.

◆산업 생태계 바꾼 혁명

바퀴 달린 수레를 말이 끄는 마차는 오랜 세월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다가 자동차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밀려났다. 말은 값이 상당히 비싸며 풀을 먹으면서 아무데서나 배설을 했다. 휘발유만 넣으면 빠르게 멀리까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동차의 편의성에 사람들이 쉽게 익숙해졌다.

1900년에 찍은 뉴욕 거리 사진을 보면 온통 마차로 가득하다. 당시 뉴욕은 말과 마차에 의한 교통사고, 소음, 말똥에 시달렸다. 이런 문제점들은 자동차 등장으로 해결됐다. 1913년에 찍은 뉴욕 거리 사진에는 자동차가 가득하다. 5000년간 사용되던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되는 데는 불과 1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상생활과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1914년 헨리 포드는 수공업으로 제작하던 자동차산업에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생산이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수공업으로 만들 때 700달러였던 자동차 가격이 290달러로 내려갔다.

자동차산업에서 등장하는 혁신적인 생산기술, 경영기법, 관리기술 등은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산업생태계를 전체적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켰다. 이동수단의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인류 문명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났다. 자율주행차가 대중적으로 상용화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날 변혁이 지금의 상상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7호(2018년 11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