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0일(한국시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간 A매치 경기가 펼쳐진 당시, 경기 6일전 작고한 요한 크루이프를 기리기 위한 배너가 등장하면서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의 사후 모든 축구 팬들이 존중을 보낼 만큼 크루이프는 현대 축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인물이었다. /사진=로이터
유럽 4대 리그 중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현 리그 선두 팀들을 지도하는 감독 모두가 한명의 위대한 축구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 인물은 바로 2016년 4월 작고한 ‘플라잉 더치맨’ 요한 크루이프다.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시절 크루이프의 지도를 직접 받은 적통 후계자로 잘 알려졌다.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가 별세한 후 인터뷰에서 “크루이프를 통해 축구를 이해했다. 그의 조언은 너무나 중요했다. 그는 나의 눈을 뜨게 해줬다”며 그의 지대한 영향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있는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역시 크루이프의 추종자다. 그 역시 짧지만 3년간 크루이프가 이끄는 바르셀로나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바르셀로나에 실용주의를 접목시킨 루이스 엔리케 후임으로 부임한 발베르데는 ‘크루이프 철학’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을 꺾는 등 돌풍을 일으키며 분데스리가 선두에 나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루시앵 파브르 감독 역시 최근 미국 매체 폭스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크루이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파브르 감독이 도르트문트 부임 전 이끌었던 묀헨글라드바흐는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수비적인 팀이었지만 크루이프가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인 ‘원터치’ 패스를 중심으로 상대방의 압박을 벗겨내며 공격을 전개했다. 파브레 감독은 우수한 공격자원이 풍부한 도르트문트에 본인의 축구 색깔을 덧입히며 안정성에 화력까지 겸비한 팀을 구축했다.
◆‘토털사커’ 이끈 그라운드 내 지휘자
수많은 지도자에게 영감을 준 크루이프는 현역시절부터 손꼽히는 실력을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전술 이해도가 무척 뛰어났다. 전 아스날 감독인 아르센 벵거는 크루이프가 경기장 내에서 동료 두명에게 포지션 체인지를 지시한 후 정확히 15분 후 다시 그들에게 원 위치로 돌아갈 것을 지사한 걸 보고 충격받았다고 고백했다. 뱅거는 “어느 누구도 크루이프 같은 축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크루이프에게 전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다. 미헬스 감독은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이 이끌었던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의 전원 공격을 체계적으로 다듬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토털사커’를 완성시킨 전술의 대가다.
미헬스의 토털사커는 기본적으로 후방 최종라인을 하프라인 근처까지 옮긴 형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진영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 골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 볼을 빼앗긴 순간에는 우리 편 진영으로 복귀해 수비 대형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시 볼을 탈취하기 위해 주변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선수들도 동시에 압박에 들어간다.
그라운드 위에 있는 선수 전원이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겸해야 했기에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헬스가 고안한 방법이 ‘포제션’이다. 말 그대로 볼을 계속해서 소유한다는 뜻으로,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동시에 주도권을 계속 쥐면서 기회를 엿본다.
여기에 토털사커의 선수들은 특정 포지션에 있는 선수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선수가 이를 커버하는 유기적인 플레이를 병행했다. 예컨대 4-3-3의 원톱 공격수가 미드필더에게 공을 받거나 압박수비를 위해 아래로 내려가면 공격형 미드필더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대인방어가 주를 이루고 포지션별 역할 분업이 철저했던 당시 축구계에서 미헬스식 토털사커는 가히 ‘혁명’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러나 매우 생소했던 이론이었던 만큼 선수들이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오랫동안 볼을 소유해야 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과 패싱력을 지녀야 하는데 충분한 전술 이해는 물론 필요한 능력까지 갖춘 선수가 바로 크루이프였다.
크루이프와 함께 요한 네스켄스, 루드 크롤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뭉친 아약스는 1970년대 유럽 축구를 지배한다. 아약스는 1970-1971시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 FC를 2-0으로 물리친 후 3년 연속 유럽 정상에 오른다.
특히 1971-1972시즌에는 미헬스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FC 바르셀로나로 팀을 떠났음에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럽 축구 역사상 셀틱에 이어 두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한다.
미헬스 감독과 크루이프는 1973년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재회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사제의 연을 이어간다. ‘토털사커’가 이식된 ‘오렌지군단’은 4강에서 당대 최강이자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브라질을 2-0으로 완파하면서 세계 축구 정상에 단 한걸음만 남겨뒀다. 그러나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버티는 서독에게 1-2로 역전패하면서 월드컵 트로피를 아쉽게 놓쳤다.
비록 크루이프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인정받아 월드컵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그해 발롱도르까지 거머쥐면서 세계 최고선수로 우뚝 섰다. 뛰어난 리더십과 환상적인 개인기, 패싱력을 갖춘 크루이프가 경기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현재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만큼이나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FC 바르셀로나를 이끌 당시 요한 크루이프. 크루이프는 프리메라리가 4연패, 유러피언컵 우승 등 숱한 우승을 팀에 선사했음은 물론, 유소년 팀 '라 마시아'를 구축하면서 구단의 미래까지 책임졌다. /사진=로이터
◆아약스·바르셀로나에 수많은 유산 남긴 지도자
당대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총 세차례나 수상하는 등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크루이프였지만 감독으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선수시절 가장 화려한 족적을 남긴 아약스에서 지도자로 데뷔한 크루이프는 1985년부터 3년 간 KNVB컵 2회 우승, 컵 위너스컵을 차지하지만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PSV 아인트호벤에 밀려 리그 우승에는 실패한다.
이후 1988년 바르셀로나로 팀을 옮긴 크루이프는 본인이 경험했던 축구 철학을 재현하기 위해 선수들을 수집한다.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 로날드 쿠만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 ‘드림팀’이라고 불린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는 미헬스식 토털사커를 더욱 발전시킨 3-3-3-1 포메이션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3-3-3-1 포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위치에서든 선수 간 ‘삼각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수 두명이 서로 주고받는 패스는 패스 길목에 상대 수비수가 자리잡으면 어려움을 겪지만 세명이 패스를 한다면 어떤 압박도 풀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크루이프의 구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모든 포지션에서 유기적으로 패스플레이가 펼쳐져야 하는 만큼 수준급 선수들이 배치돼야 했기에 ‘드림팀’을 구축하는 일은 필연이었다.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프리메라리가 4연속 우승을 달성했으며 특히 1992년에는 구단의 염원이던 유러피언컵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2년 후 1993-1994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역대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밀란 제너레이션’의 AC밀란을 맞아 0-4로 완패 당하며 크루이프의 팀은 내리막을 걸었다.
한편 크루이프는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본인이 거쳐 간 팀들에 체계적인 유소년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는 해당 팀들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자신의 철학인 ‘토털사커’를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팀에서부터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크루이프는 먼저 아약스에서 유소년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한다.
마르코 반 바스텐, 데니스 베르캄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프랑크 데 부어 등 네덜란드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성장했다. 특히 AC밀란으로 이적한 반 바스텐을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들은 계속해서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1994-1995시즌 팀의 네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다.
아약스 유스팀에서 대 성공을 거둔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도 유스시스템을 이식한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 마시아’다. 90년대 이후 유럽 축구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AC밀란을 필두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등 자본을 앞세운 스타 선수 영입전이 한창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바르셀로나는 유스 선수들을 차근차근 길러냈고 사비 에르난데스,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지오 부스케츠 등 역대 최고의 바르셀로나를 구성하는 스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끈 지도자가 크루이프에게 모든 것을 전수받은 펩 과르디올라다. ‘드림팀’의 일원이었던 과르디올라는 2008-2009시즌 바르셀로나에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티키타카’를 장착한 토털사커를 완벽하게 구현하면서 유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을 구축한다.
‘드림팀 3기’라고 불린 과르디올라 사단은 트레블을 넘어서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면서 앞서 언급한 밀란 제너레이션, 유러피언컵 5연패를 이룬 ‘저승사자’ 레알마드리드와 비견될 역대급 팀으로 등극한다.
당대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총 세차례나 수상하는 등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크루이프였지만 감독으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선수시절 가장 화려한 족적을 남긴 아약스에서 지도자로 데뷔한 크루이프는 1985년부터 3년 간 KNVB컵 2회 우승, 컵 위너스컵을 차지하지만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PSV 아인트호벤에 밀려 리그 우승에는 실패한다.
이후 1988년 바르셀로나로 팀을 옮긴 크루이프는 본인이 경험했던 축구 철학을 재현하기 위해 선수들을 수집한다.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 로날드 쿠만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 ‘드림팀’이라고 불린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는 미헬스식 토털사커를 더욱 발전시킨 3-3-3-1 포메이션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3-3-3-1 포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위치에서든 선수 간 ‘삼각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수 두명이 서로 주고받는 패스는 패스 길목에 상대 수비수가 자리잡으면 어려움을 겪지만 세명이 패스를 한다면 어떤 압박도 풀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크루이프의 구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모든 포지션에서 유기적으로 패스플레이가 펼쳐져야 하는 만큼 수준급 선수들이 배치돼야 했기에 ‘드림팀’을 구축하는 일은 필연이었다.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프리메라리가 4연속 우승을 달성했으며 특히 1992년에는 구단의 염원이던 유러피언컵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2년 후 1993-1994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역대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밀란 제너레이션’의 AC밀란을 맞아 0-4로 완패 당하며 크루이프의 팀은 내리막을 걸었다.
한편 크루이프는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본인이 거쳐 간 팀들에 체계적인 유소년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는 해당 팀들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자신의 철학인 ‘토털사커’를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팀에서부터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크루이프는 먼저 아약스에서 유소년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한다.
마르코 반 바스텐, 데니스 베르캄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프랑크 데 부어 등 네덜란드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성장했다. 특히 AC밀란으로 이적한 반 바스텐을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들은 계속해서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1994-1995시즌 팀의 네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다.
아약스 유스팀에서 대 성공을 거둔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도 유스시스템을 이식한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 마시아’다. 90년대 이후 유럽 축구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AC밀란을 필두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등 자본을 앞세운 스타 선수 영입전이 한창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바르셀로나는 유스 선수들을 차근차근 길러냈고 사비 에르난데스,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지오 부스케츠 등 역대 최고의 바르셀로나를 구성하는 스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끈 지도자가 크루이프에게 모든 것을 전수받은 펩 과르디올라다. ‘드림팀’의 일원이었던 과르디올라는 2008-2009시즌 바르셀로나에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티키타카’를 장착한 토털사커를 완벽하게 구현하면서 유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을 구축한다.
‘드림팀 3기’라고 불린 과르디올라 사단은 트레블을 넘어서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면서 앞서 언급한 밀란 제너레이션, 유러피언컵 5연패를 이룬 ‘저승사자’ 레알마드리드와 비견될 역대급 팀으로 등극한다.
자신이 남긴 유산을 지켜본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가 2009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룬 이후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가 100년의 역사 동안 이루지 못했던 세계 챔피언 등극을 이뤄 자랑스럽다. 바르사는 항상 경기장에서 품격 있는 축구를 보여준다"며 흡족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비록 크루이프는 2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감독과 선수가 펼치는 플레이와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을까. 지금도 '크루이프이즘'은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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