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M14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우리나라의 수출입 무역규모가 2년 연속 1조달러를 돌파했다. 명실상부한 무역대국으로 자리잡은 셈이지만 내실을 뜯어보면 그늘이 더 짙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데다 수출을 견인해 왔던 반도체 호황이 꺼질 전망이다. 특히 내수경기는 수년째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무역 1조달러 시대의 이면을 살피고 문제점을 짚어봤다. 또한 내실이 탄탄한 무역대국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무역 1조달러시대의 그늘] ②슈퍼사이클 둔화, 내년엔 ‘직격탄’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효자다. 한국을 IT산업 선도국가로 이끌었고 경제지표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같은 전성기는 종착을 향해 달리는 모양새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18년 수출입 평가 및 2019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는 세계 최초 단일부품 기준 1000억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국내 총 수출액의 21.2%를 차지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36.6%로 같은 기간 중국 25.3%, 일본 6.7%, 미국 1.7%에 크게 앞섰다. 국제무역연구원은 12월까지 포함한 올해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을 30.4%로 추정했다.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매년 두자릿수를 넘어서며 고성장세를 유지했지만 내년부터 반도체 단가하락의 영향으로 성장폭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57.4%를 기록한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올해 30.4%(추정치)로 내려앉은 뒤 내년에는 5.0%까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내 수출기여율 90.0%가 넘는 반도체 성장폭이 줄어들면 무역규모도 하락세를 피하긴 어렵다.

◆슈퍼사이클 둔화, 반도체 ‘흔들’


IT업계는 일제히 내년 반도체시장의 하락세를 예견했다. 초호황기를 맞았던 반도체시장은 올 하반기부터 D램 가격 하락으로 고점 논란이 일면서 위기론으로 번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4분기 D램 평균 판매가는 전분기 대비 약 8% 하락할 전망이다. PC D램, 서버 D램 및 특수 D램 평균단가(ASP)는 10%에 가까운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내년 세계 반도체시장 매출전망치를 4901억달러로 조정했다. 8월 보고서를 통해 전년 대비 5.2% 상승한 5020억달러의 매출을 예상했다가 3개월만에 하향 조정한 것. 반도체시장 매출은 증가하지만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역성장으로 돌아선다고 평가했다.

이는 2년 가까이 지속된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올해로 끝나는 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에 따른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 푸젠진화반도체와 자국 기업간 거래를 금지시켰다. 해당 국면이 장기화되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중국 ICT산업 성장 둔화에 따라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YMTC, 이노트론, JHICC 등 중국 3대 메모리업체가 내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체제에 돌입하면 공급과잉 현상도 피하기 어렵다. 물량공세로 인한 단가하락이 예상된다.

/자료=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그래픽=머니S
슈퍼사이클에 맞춘 대형 설비투자가 대부분 올해 마무리돼 사실상 반등 여력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전년 대비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은 올 1분기와 2분기 각각 72.3%와 0.7% 증가했지만 3분기부터 31.5% 줄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해까지 설비투자 증가분의 70%를 차지했던 반도체분야가 쪼그라들면서 전 산업에 영향을 끼쳤다.
LG경제연구원은 ‘2019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반도체 투자가 60% 이상 확대되며 전체 설비투자가 16% 가량 큰 폭으로 증가했으나 올 들어 이런 흐름이 둔화된 모습”이라며 “올초 반도체 업종의 대규모 투자가 일단락되며 2분기 전체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반등의 키, 글로벌 투톱에 달렸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구조와 산업경쟁력은 내년 국내 경제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정부도 반도체 중심의 수출구조가 가져올 구조적 불안정성을 우려했다. 최근 10년간 10대 수출 주력품목 중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업종의 수출증가율은 전체 수치를 밑도는 상황이다. 총 수출증가율이 플러스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견조한 성장세를 예상하던 당국은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관련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잘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산업 구조개혁이 지연되며 성장잠재력이 지속 하락했고 주력업종 경쟁력이 약화된 가운데 신성장동력 발굴이 지연됐다”며 “규제개혁 등 혁신성장도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성과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결정적 반등의 키를 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산업의 불확실성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한 대비에 나설 계획이다. 수요 회복을 위해 생산라인을 늘리고 시설투자를 확충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부문인 파운드리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해 경기도 화성에 EUV 라인을 확대한다. 화성 EUV라인은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건설중이며 완공 후 시험생산을 거쳐 2020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 본사 안에 M16 공장을 2020년 10월 완공하고 10나노 초반대 D램 양산에 돌입한다. 지난 4월 15조5000억원을 투입해 준공한 청주 M15공장을 통해 3D 낸드플래시도 대량 생산에 나선다. 양사는 내년 비수기를 극복하고 2020년까지 생산공정 노하우를 쌓아 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산업 활성화로 신규수요층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도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보조를 맞춘다. 글로벌 수요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기 위해 1조6000억원을 들여 대·중·소기업이 함께 입주하는 반도체 특화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한편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연구개발(R&D)에 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전봉걸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비중이 반도체에 집중된다는 것은 기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방증”이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둔화된다고 해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민간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이나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서포트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2호(2018년 12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