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전경. /사진제공=경기도소방재난본부
년말 연시를 앞두고 경기도에 연이은 정신질환 관련 살인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12시쯤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주택에서 20대 아들이 휘두른 흉기에 80대 할머니와 50대 어머니가 목 등에 자상을 입었고 20대 여동생이 목부위에 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칼부림 이후 아들은 자해를 시도했다. 바로 출동한 경찰과 수원소방서의 신속한 현장대응으로 경찰과 동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들은 평소에 정신착란 등 정신이상의 증세를 보였다는 게 가족의 주장이다.

또 28일 오전 4시쯤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에서도 환청으로 인한 가족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아들이 아버지와 누나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미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지난 6월 20일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30대 아들이 부엌에 있던 흉기로 부모를 찔러 살해한 사건이 충격을 줬다. 당시 아들은 "부모를 죽여야 나의 영혼이 산다는 환청이 들려 살해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8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제1형사부(정철민 부장판사)가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빈번이 일어나는 정신이상 질환자에 대한 심각성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가족이 책임과 피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범죄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2015년 6300여건에서 2017년 8300여건으로 30% 넘게 증가했다. 이 중 살인 사건은 같은 기간 64건에서 73건으로 15%가량 늘었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흔한 질병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많이 있다. 가장 문제는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가 남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국민행복도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OECD ‘더 나은 삶’ 지수(BLI: Better Livelihood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순위는 38개국 중 29위였고 소득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2014년 25위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문제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우울증·불안장애 등의 증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증상이 분노로 표출돼 끔찍한 사건, 사고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정신건강 악화도 간과할 수 없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신건강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각한 수준의 정신질환도 처음에는 자존감 상실이나 우울·불안 같은 개인의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렇게 앓게 된 정신질환은 다른 질병보다 병증이 오랜 기간 지속하며 그로 인해 개인과 가정경제 문제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규섭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은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이해 수준은 낮다 보니 정신건강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소한 정신건강 문제를 방치하면 질환 자체로 겪는 정신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마저 겹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일상적인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 보니 사소한 질환인데도 치료를 꺼리거나 본인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의식적으로 질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 사간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연간 10조원이 넘어섰다. 개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결국 국가·사회적으로 생산성 손실,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 등의 문제로 확대된다.

20년간 시행된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한 지 1년이 경과한 가운데, 정신질환자들의 지역사회 복귀를 위해 정신병상을 축소하고 정신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7년 5월 30일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오히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강제입원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이 법에 따라 환자 본인이 원치 않을 경우 입원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의료기관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이 법은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기존 시설수용 위주에서 지역사회 복귀, 즉 탈수용화를 유도하고 있다.

결국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정작 환자에게선 치료기회를 빼앗고 사회에는 부담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자치구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처럼 ‘외래치료명령제’를 통해 위험이 분명한 사람의 치료를 법원 차원에서 의무화가 필요하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7월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 1년 경과, 정신보건정책의 나아갈 방향’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정신보건 현황과 정신보건법 개정 이후 쟁점 및 현안을 분석하고, 정신보건정책의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부분 정신질환은 지속적인 치료와 상담이 이뤄지면 확연히 나아지는데 최근 1인 가구가 늘며 방치되는 정신질환자가 많다. 예산을 늘리고 인력을 충원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이들을 돌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