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알티마./사진=닛산코리아

뛰어난 상품성을 지녔지만 불매운동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존재감이 잊혀진 ‘비운의 차’ 화려한 디스플레이나 계기판, 편의사양은 없지만 잘 달리고 잘 서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자동차. 바로 닛산 알티마다.
알티마는 1992년 첫 출시 후 지금까지 600만대 이상 팔린 국제 베스트셀링 세단으로 해외에선 그 디자인과 상품성을 높이 사고 있다. 한국엔 지난 2009년 4세대 모델이 첫 발을 내딛은 이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해 왔다. 닛산코리아는 2019년 6월 6세대 알티마를 내놨지만 불매운동 여파를 피해가지 못 했다. 닛산 알티마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 하고 서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반일감정은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곳곳에 살벌한 기운은 도사리고 있다. 2019년 9월 이후 일본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들은 세자릿수 번호판을 달고 어디 다니기 부담스럽다고 한다. 2019년 12월 16일 기자는 알티마를 타고 저녁 8시 광화문 일대 주행에 나섰다. 광화문은 어느덧 애국단체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이날 시승코스는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거쳐 남산순환로를 주행한 뒤 양재동으로 복귀하는 약 30㎞ 코스였다. 도심 주행성능과 코너링, 일본 자동차에 대한 시선을 정확히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구성했다.

알티마 익스테리어는 이미 많이 본 터라 가장 궁금했던 시트 착좌감부터 느껴보기로 했다. 닛산의 자랑 저중력 시트답게 안락하다. 2019년 11월 시승했던 신형 맥시마는 감싼다는 느낌과 함께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알티마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은 느낌이다.

20세기 고급세단처럼 쇼파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불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2열 착좌감 또한 앞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쉬운 게 있다면 2열 헤드레스트가 분리형이 아닌 일체형이라는 것이다. 국산 택시 이후로 오랜만에 일체형 헤드레스트를 타보는 것 같다.


휠베이스가 50㎜ 길어져서 그런지 2열 공간이 상당히 여유로웠다. 무릎공간도 넓었고 헤드룸도 여유 있었다. 175㎝ 신장을 가진 기자가 주먹을 대어 보자 1개 반 정도 들어갔다.
알티마 계기판./사진=전민준 기자

6세대 알티마는 2.5ℓ 자연흡기 엔진 2가지 사양과 2.0ℓ 터보 1가지 사양이 출시됐다. 시승차는 2.5ℓ 자연흡기 엔진중 옵션 강화 모델인 SL TECH 모델이다. 차량가격은 3590만원으로 엔트리 모델인 스마트 트림의 2990만원과 차이가 크다. 안전 옵션과 기능적인 부분을 생각할 땐 2.5SL TECH의 가성비가 더 좋다는 생각이다. 2.5 스마트 트림은 3000만 원 언더라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트림이라는 느낌이 짙다.
본격적으로 알티마를 느끼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걸었을 때의 아이들링(엔진을 가동한 채 힘 걸림이 없는 상태에서 저속으로 회전시키는 일)은 의외로 정숙했다. 가솔린 모델이라곤 하지만 4기통 GDi 엔진 특성상 아이들링에서 소음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 이상의 정숙성에 놀랐다.

주차장에서 나오기 위해 후진기어를 넣었다. 센터페시아의 8인치 디스플레이가 반으로 나뉘며 오른쪽에는 후방카메라, 왼쪽에는 360° 화면이 나타났다. 반가운 옵션이긴 했지만 화질이 생각했던 것 보다 열악하다. 화질만으로 보자면 2009년에 출시한 차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조용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닛산의 CVT 미션은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맥시마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질감을 찾기는 힘들다. 저속구간에서 부드러움이 돋보인다. 서스펜션 세팅은 전형적인 일본 패밀리 세단이다. 유럽 세단의 딱딱함이 아닌 부드러움이 더 강했다. 17인치의 휠과 55의 타이어 편평비 역시 부드러움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

스티어링휠 역시 기존의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바뀌면서 상당히 가벼워졌다. 유럽의 D세그먼트나 E세그먼트의 차량을 타는 사람들에겐 이런 가벼움이 느슨함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유럽 브랜드의 설정이 늘 정답은 아니듯이 이번 6세대 알티마는 여성 오너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오너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알티마 디스플레이 화면./사진=전민준 기자


속도를 좀 더 내어봤다. 184마력의 24.9㎏f.m의 토크는 무게 1.5톤의 차량을 거동을 무리 없이 움직이게 해줬다. 시내 주행에서도 추월을 위해 가속을 할 때에도 힘겨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스포츠 세단이나 고성능 세단의 폭발적인 토크감은 아니지만 패밀리 세단 본연의 운전을 한다면 부족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좀 더 가열 차게 달려보기 위해 스포츠 모드 버튼을 찾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매뉴얼을 찾아봐야 하나 하는 찰나에 기어노블 자체에 위치한 조그마한 D/S 버튼을 누르니 계기판에 표시가 되며 rpm을 쉽게 떨구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자 자연흡기 답게 RPM이 급속도로 치솟았다. 0-100㎞/h를 테스트하기 위해 엑셀을 찍어 누르니 rpm을 6500rpm까지 가져갔다. 스포츠 세단은 아니라지만 높은 영역의 엔진사운드가 이채롭다. 7초 초반 정도로 소화 하는 것으로 봐서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차량이 없는 구간에선 내친김에 한계치까지 가봤다. 직분사 2.5리터 엔진이라 그런지 비록 진도는 빠르지 않지만 바늘이 쉬는 구간이 없다.

차를 돌려 코너가 있는 구간을 향해 달려본다. 12월 하순의 추운 겨울이기에 무리는 하지 않기로 한다.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투란자 T005A 215/55/R17 타이어로 4계절용이 아닌 3계절용이지만 접지력 위주의 타이어다.

순정타이어에 내심 기대를 걸어본다. 다행히 이번 겨울 12월의 낮 기온은 대부분 영상 7~8도라 조금 안심해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약한 각도가 있는 내리막 코너에서 핸들을 강하게 꺾어본다. 스트로크가 긴듯 했던 서스펜션과 17인치 타이어라는 점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롤링이 크지 않았다. 브레이크 또한 원하는 만큼 감속되고 밀린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나머지 코너에서도 자신감을 더 붙여본다. 타이어가 살짝 살짝 신음을 내긴 하지만 예상했던 언더스티어(가속했을 때 최초의 원보다 점점 회전하는 차의 특성이 커지는 것)의 느낌보다는 덜하다. 짜릿하다거나 재미있는 편은 아니었다.

남산순환로에서 내려와 광화문으로 향했다. 가장 긴장됐던 순간이었다. 의외로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부러 횡단보도 앞에서 정차하기도 했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도 괴롭혀서 이젠 불쌍해 보이는 걸까.

잘 달리고 잘 서고 편안한 패밀리 세단의 기본 요건을 성실하게 충족시킨 차량을 만나기 쉽지 않다. 알티마는 나들이가 잦은 4인 가족을 위한 세단을 찾는 아빠, 운전하기 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녀들의 등하교 차량을 찾는 엄마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자동차다운 자동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