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n번방’사건의 열쇠는 텔레그램이 쥐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진=로이터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n번방’사건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텔레그램 측의 협조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사건으로 현재 검거된 이들 외에도 가해자 전원의 처벌 여부는 텔레그램이 쥐고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본사 위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도 텔레그램의 협조를 위해 현재 본사를 추적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 공개된 바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본사는 서유럽에 있으며 보안을 위해 본사를 수시로 옮긴다.

다만 본사의 소재를 파악한다고 해도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경찰청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텔레그램에 불법 영상물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 2~3일 후 영상이 삭제되지만 게시자의 인적사항을 제공해 달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왜 수사기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까
텔레그램이 수사기관의 요청에 비협조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배경은 창업자이자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러시아 태생인 파벨 두로프는 2006년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브콘탁테(VK)를 설립해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을 겪게 된다.

브콘탁테와 텔레그램을 개발한 파벨 두로프. /사진=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캡처
2012년 러시아에서는 반정부시위가 이어졌는데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VK를 통해 관련 정보를 교환했다. 러시아 정부는 VK 측에 시위 참가자의 인적사항을 요구했지만 두로프는 이를 묵살하고 정부의 요구 사항이 담긴 공문을 VK에 공개했다. 러시아 정부의 미움을 산 그는 VK 주주총회를 통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러시아를 떠나게 됐다.

러시아를 떠나기 직전이던 2013년 두로프는 ‘검열받지 않을 자유’를 모토로 텔레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이후 노출을 최소화하며 텔레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텔레그램 뿐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내역도 살펴야”
이같은 운영방침 때문에 텔레그램은 종종 ‘범죄자의 도피처’로 악용된다. ‘n번방’과 ‘박사방’을 운영한 범죄자들과 이에 가담한 수많은 동조자도 텔레그램이 수사기관에 이용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뿌리를 내린 것이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북관에 출범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 연말까지 운영예정인 디지털성범죄 특수본은 수사실행, 수사지도·지원, 국제공조, 디지털 포렌식, 피해자 보호, 수사관 성인지교육 담당 부서들로 구성, 협업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6월 말까지 예정됐던 텔레그램·디스코드 등 SNS와 다크웹, 음란사이트, 웹하드 등 4대 유통망 특별단속도 연말까지 연장된다. /사진=뉴스1
국내 여론은 텔레그램이 수사기관에 협조할 지 여부에 관심을 둔다. 범죄에 가담한 이들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는 텔레그램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텔레그램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만큼 수사기관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텔레그램의 암호화 파일을 강제로 여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거 국내 매체에서는 ‘텔레그램이 뚫렸다’는 식의 보도가 몇차례 등장했지만 아직 실질적으로 텔레그램의 자체 프로토콜을 뚫은 사례는 없다. 지금까지 공개된 방식은 휴대폰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공략한 것이다.

물론 검거된 운영진의 휴대폰에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수행하면 입금내역, 대화방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번호가 아닌 대화명만 언급된 정도면 신원파악이 어려워진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텔레그램 정보만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가상화폐 거래소 내역을 교차해 신원을 추적해야 한다”며 “가상화폐 거래내역을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 거래소를 이용한 내용을 파악하면 어느정도 인물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