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필린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HD현대
25일 한국전쟁 75주년 맞아 한국 조선업의 뛰어난 기술과 자주 안보 위상이 주목된다. 전후 피난선을 수리하던 대한한국은 세계 해군의 전략 자산을 건조하고 정비하는 기술국가로 성장했다. K조선 역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안보와 외교 전략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산업의 정체성과 방향을 다시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50년대만 해도 한국은 조선 기술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해양산업 기반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선박을 제대로 설계하거나 건조할 인프라가 부족해, 전쟁 직후에는 미군이 제공한 폐선과 군수지원선이 사실상 유일한 수송 수단이었다. 당시 부산과 마산의 간이 조선소에서 미군 함정을 수리하며 기술을 조금씩 익혔고 미국의 잉여선박 원조(MSAP 프로그램 등)가 조선업 태동의 마중물이 됐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국은 세계 각국에 함정을 수출하는 글로벌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잠수함은 물론 고속정·구축함·상륙함 등 특수선 전반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최근엔 미국의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하는 등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조선업 재건을 내건 '해양 지배력 복원'(Restoring America's Maritime Dominance)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단순한 수주국이 아닌 '동맹국 산업 파트너'로 위상이 격상되고 있다. 미국은 동 전략을 통해 중국 조선산업의 확장을 견제하는 동시에 동맹국 조선소에 함정 건조를 허용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사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달 존 필린(John Phelan) 미국 해군성 장관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조선소를 방문해 글로벌 조선 선도 기업의 역량을 확인하고 한·미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현장 시찰을 마친 후 존 필린 장관은 "이처럼 우수한 역량을 갖춘 조선소와 협력한다면 적시 유지·보수 활동이 가능해져 미 해군 함정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필린 미국 해군성 장관(오른쪽 첫번째)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정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한국의 함정 건조 기술은 이제 세계 각국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 HD현대가 주최한 '한·미 조선협력 전문가 포럼'에는 앤드류 게이틀리(Andrew Gately) 주한미국대사 상무공사와 미시건대, MIT 등 대학 조선해양공학 교수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해 상선 및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고 스마트조선소 구축 및 자율운항 선박 기술 현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호의 MRO 사업을 수주해 성공적인 정비 과정을 거쳐 인도했다. 지난해 12월엔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업에 진출했다. 필리조선소 인수는 한화오션이 보유한 최고의 기술력과 솔루션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글로벌 해양 방산 산업에서의 입지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조선업 강화법'(SHIPS for America Act)과 '해군 준비태세법' 등 입법은 자국 해양력 강화의 수단으로 조선업을 다시 군수·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실행 기반은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기술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은 2024년 기준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 0.04%에 불과하며 자국 조선소의 생산기반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이다.

이 같은 산업 공백을 한국이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해군 물자를 미국에 의존했던 한국이, 이제는 미국 해군 전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술과 생산능력을 제공하는 구조로 역전된 것이다. 단순히 수주를 따낸 것이 아니라 기술 파트너로서 동맹 구조 속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 조선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한국의 세계적인 건조 군함 능력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