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A사는 2017년 한 TV홈쇼핑 채널을 통해 4131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96.9%인 4001만원을 홈쇼핑이 판매수수료로 챙겼다. 판매업체에 돌아온 몫은 전체 매출의 3.1%인 130만원. 물건을 팔아 이익을 챙기기는커녕 원가를 포함해 오히려 수천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TV홈쇼핑업계의 판매수수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수수료를 과도하게 책정해 홈쇼핑업체가 수익 대부분을 챙기고 정작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TV홈쇼핑이 개국한 지 25년, 그사이 수많은 납품업체가 홈쇼핑 입점을 포기하거나 입점했다가도 결국 실패한 이유다.

홈쇼핑업계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채널 송출 대가로 지급하는 송출수수료가 과도해 판매수수료를 줄일 수 없다고 항변한다. 갑(甲)인 유료방송사로부터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을(乙)인 홈쇼핑은 병(丙)인 납품업체에 ‘을질’을 하는 상황. 갑질보다 더한 을질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시간당 8000만원… 중간에서 ‘꿀꺽’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GS·CJ·현대·롯데·NS·홈앤·공영홈쇼핑 등 7개 TV홈쇼핑사가 받는 평균 판매수수료율은 중소기업 상품 30.5%, 전체 상품 29.6%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CJ오쇼핑(중소기업 상품)과 NS홈쇼핑(전체상품)의 수수료율은 40%에 육박했다.

판매수수료율은 전체 상품 매출액에서 홈쇼핑이 가져가는 비율을 의미한다. 판매수수료율이 40%인 경우 1000만원을 벌면 홈쇼핑이 중간에서 400만원을 챙긴다는 뜻이다. 이는 ▲백화점(21.7%) ▲대형마트(19.6%) ▲아울렛·복합쇼핑몰(14.7%) ▲온라인몰(10.8%)의 수수료율과 비교해도 매우 높다.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내는 경우 그나마 낫다. 아예 수수료를 정해놓고 방송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홈쇼핑 수수료 체계는 ▲상품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내는 ‘정률수수료’ ▲일정 금액을 내는 ‘정액수수료’ ▲정률과 정액수수료를 섞은 ‘혼합수수료’ 등으로 나뉜다.

이중 정액수수료가 ‘을질’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상품 판매액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도록 정해져 있어서다. 예컨대 1시간 동안 4000만원의 정액수수료를 내기로 약정한 상품의 실제 판매액이 3000만원인 경우 이 업체는 1000만원의 손해를 보더라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 상품 판매가 부진하더라도 홈쇼핑은 피해를 보지 않는 반면 납품업체는 차액만큼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위험부담이 높은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9년 과기정통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액수수료 방송의 시간당 평균 수수료 금액은 8200만원, 중소기업 상품은 8600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매출이 보장되지 않는 영세업체일수록 홈쇼핑이 정액수수료 방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는 2019년부터 홈쇼핑 판매수수료율 산정기준에 ARS 할인 비용, 무이자 할부 비용 등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모든 비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홈쇼핑 방송 중 나오는 자료영상 제작비, 방송 중 시연을 위한 재료비, 모델비 등 판매수수료에 집계되진 않지만 업체가 부담하는 비용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홈쇼핑 판매대행사(벤더) 관계자는 “실제 체감하는 홈쇼핑 수수료는 평균 40%다. 여기에 벤더를 끼고 들어가면 5~15%의 수수료가 더 붙는다”면서 “비용 부담은 있지만 신규 납품업체의 경우 심사 과정에서 중간 탈락을 방지할 수 있어 대부분 벤더를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TV홈쇼핑업계의 판매수수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홈쇼핑업계는 송출수수료 때문에 판매수수료를 줄일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갑질' 당하며 '을질'을 가하는 형국이다. /디자인=김은옥 기자

‘갑질 종합세트’ 대상은 중소기업

심지어 홈쇼핑업체들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홈쇼핑이 중소·중견기업으로부터 받아낸 수수료는
 대기업보다 13.8%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2%) ▲온라인몰(4.6%) ▲대형마트(4.9%) ▲아울렛·복합쇼핑몰(5%)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는 홈쇼핑의 설립 취지에도 어긋난다. 홈쇼핑은 1995년 중소기업과 농어민의 판로 확대 및 유통구조 개선을 취지로 도입됐다. 실제로 초반엔 락앤락 용기, 한스킨 비비크림, 휴롬 원액기, 댕기머리 샴푸 등 중소기업 제품이 홈쇼핑을 통해 성장하면서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홈쇼핑이 오히려 중소기업을 상대로 수수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제품 홍보나 판로 확보가 절실한 중소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홈쇼핑업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푸념했다.

TV홈쇼핑 MD 출신의 업계 전문가는 “홈쇼핑이 홍보 효과가 큰 데다 추후 다른 유통사 입점이 쉬워지기 때문에 입점하려는 중소기업이 많다”면서 “하지만 홈쇼핑과 2년 동안 꾸준히 거래하는 납품업체는 20%가 채 안되고 나머지는 망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홈쇼핑업체 입장에선 납품업체 10곳 중 매출에 도움되는 1~2곳만 있어도 된다”며 “매출이 안 나올 경우 홈쇼핑이 일방적으로 판매를 중단하는데 방송을 위해 물량을 많이 준비했던 업체만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수료 문제 외에도 TV홈쇼핑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서면미교부 ▲구두발주 등 불분명한 계약 ▲경영정보 요구 ▲판촉비 부당전가 ▲부당한 정액제 강요 ▲방송시간 강제 변경·취소 등 납품업체를 상대로 각종 횡포를 부려 당국에 적발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공정위가 홈쇼핑을 가리켜 ‘갑질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들의 불공정 행위는 전방위적이다.


수수료 장사 관행, 개선될까

업계에선 판매수수료가 유독 높은 원인으로 송출수수료를 지목한다. 유료방송사에 지불하는 송출수수료가 증가함에 따라 수익원이 되는 판매수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TV홈쇼핑 7개사의 송출수수료는 2008년 3551억원에서 2018년 1조6439억원으로 10년간 5배가량 올랐다.

이에 정부는 송출수수료와 판매수수료를 동시에 낮출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부터 홈쇼핑 재승인 시 판매수수료율 관련 심사를 강화하고 심사 배점을 높이기로 했다. 송출수수료 문제와 관련해 반복해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가산정협의체를 만들고 수수료 산출 근거인 유료방송 가입자 수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는 여전히 송출수수료 정상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한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송출수수료 부담 때문에 판매수수료를 낮출 여력이 없다”며 “정부의 심사 강화 지침은 재승인 때마다 나오는 얘기라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9호(2020년 6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