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4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 시민이 꽃다발을 세종대왕 동상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2020.10.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오늘 한글날인거 실화냐? 킹갓제너럴마제스티 세종머왕이 만든 한글 갓띵작 ㅇㅈ? ㅇ ㅇㅈ"
인터넷을 즐겨하는 젊은이들에겐 익숙하겠지만 중년층 이상에겐 낯설 수 있는 말이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574돌 한글날인 9일 우리 고유의 표현만큼이나 새로 생기거나 유행하는 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문화의 급속한 발달에 따른 세대 간 언어단절 우려도 나오는 요즘 한글의 새로운 사용법에 대해 알아두는 게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표현 중 신을 뜻하는 '갓'(God)을 빼놓을 수 없다. 긍정적인 표현을 할 때 주로 앞 글자를 '갓'으로 바꿔 쓴다. 예를 들어 '김철수'를 높여 부르고 싶으면 '갓철수'라고 하면 된다. 양념치킨이 좋은 사람은 '갓념치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킹(King), 제네럴(General), 엠페러(Emperor), 마제스티(Majesty), 충무공 등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대상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킹갓제네럴엠페러마제스티 세종대왕'이 예시다.
'킹갓제네럴'은 지난달 초 언론 기사를 통해서도 널리 퍼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과 그의 동료들이 나눈 소셜미디어 대화에서 "우리 킹갓제네럴더마제스티추추트레인갓갓 서OO 일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여기 나온 '추추트레인'은 야구선수 추신수의 별명이지만 서 일병이 추신수처럼 야구를 잘한다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저 추 장관의 성에서 따온 것이라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 인터넷 신조어에서는 합리적 이유보다는 그저 언어유희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며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2020.10.8/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실화냐'라는 표현도 알아두면 좋다. 기본적으로는 영미권의 'really'나 'seriously'의 우리말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2010년쯤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이 내용에 상관없이 "이거 실화냐"라고 장난삼아 묻던 것이 유행해 이젠 젊은이들의 일상에 정착했다. 정말 실화인지 궁금하지 않아도 아무 때나 사용하면 된다.
'ㅇㅈ? ㅇ ㅇㅈ'은 '인정? 어 인정'으로 읽는다. 이 역시 인터넷방송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동의를 물은 후 곧바로 스스로 답하는 방식이다. 사실 상대방 동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별 의미 없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일하기 귀찮은 부분 ㅇㅈ? ㅇ ㅇㅈ', '날씨 좋은 것 ㅇㅈ? ㅇ ㅇㅈ' 등 활용도가 다양하다.
최근 몇 년간 유행어의 핵심은 '야민정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바꿔 쓰는 야민정음은 2010년 초에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 크게 유행하더니 이제는 방송 매체에도 자주 활용된다. '명'은 '띵'으로 '귀'는 '커'로, '대'는 '머'로, '멍'은 '댕'으로, '유'는 '윾'으로 쓴다.
이를 활용한 가장 유명한 단어는 '멍멍이'를 바꾼 '댕댕이'다. 원래 단어보다 느낌이 귀엽고 입에 달라붙어서 그런지 인터넷 문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씩 들어봤을 단어다. '커엽다', '머머리(대머리)', '윾재석' 등도 유명한 예시다. 라면회사 팔도는 아예 인기 제품인 '팔도 비빔면'을 '괄도 네넴띤'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사실 야민정음은 역사가 깊은 우리 민족의 언어유희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 다수 문헌에 나오는 파자(破字) 놀이와 원리가 비슷하다. 붕(朋)을 월월(月月)로, 출(出)을 산산(山山)으로, 이(李)를 목자(木子)로 표기하는 놀이의 현대판이나 마찬가지다.
대학교에서 국문과를 졸업한 후 글 쓰는 업무에 종사한다는 30세 여성 A씨는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의 인터넷 용어가 언젠가는 표준어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다만 재미로 쓸 때와 정식 표현을 쓸 때는 구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이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60대 남성 B씨는 "표준어도 아닌 말을 왜 쓰는지 이해도 되지 않고 세대 간 언어격차가 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도 "사실 우리가 젊을 때 쓰던 신조어나 줄임말을 두고도 어른들은 언어파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가 10월 12일부터 8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은평구 댕댕이 스쿨' 홍보 포스터. '댕댕이'라는 비표준어를 썼으나 대부분의 애견인들은 그 뜻을 알고 있다. (은평구 제공)/뉴스1© News1
자신을 '한자 기반 단어 중심의 보고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고 표현한 30대 남성 C씨는 "너무 심각하게 뜻을 알 수 없는 신조어를 남발한다면 이는 언어파괴이며 누구나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며 "다만 재미있는 말이 무한히 나올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장도 지난해 신조어 관련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소강춘 원장은 지난해 573돌 한글날을 앞두고 뉴스1과 만나 "국어원장 입장에서는 쓰면 안 된다고 해야 하겠지만 언어학자 입장은 다르다"며 "한글 고유의 특징과 더불어 디지털문화가 세계 최고수준으로 발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평가했다.
소 원장은 "많은 분들이 10~20대의 언어 파괴나 좋지 못한 언어습관에 대해 걱정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던 일"이라면서도 "공적인 장에서 소통할 때는 '신어'의 사용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맞춤법을 잘못알고 쓴 표현을 재미삼아 따라하는 것도 최근 몇 년간 유행하고 있다.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오회말(OMR) 카드', '권투(건투)를 빈다', '골이따분(고리타분)한 성격', 사생활치매(침해)', '무적권(무조건)',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바람(발암)물질' 등이 있다.
다만 이런 표현은 다른 언어유희보다 특히 주의해서 사적인 자리에서 재미로만 쓰는 게 좋다. 일부러 틀리게 표현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상대 입장에게는 그저 '무식한 사람'으로 비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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