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 문화의 꽃’으로 불리던 위스키는 유흥주점이 문을 닫으며 추락했고 와인은 식사하면서 곁들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코로나19 시대 주류업계 강자로 우뚝 섰다. /사진=로이터

수입주류업계 내 희비가 엇갈렸다. 위스키와 와인이 그 주인공이다.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과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느는 분위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속도를 붙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밤 9시가 되면 거리에 불이 꺼지자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주류에 관심이 쏠렸다. ‘접대 문화의 꽃’으로 불리던 위스키는 유흥주점이 문을 닫으며 추락했다. 반면 와인은 식사하면서 곁들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코로나19 시대 주류업계 강자로 우뚝 섰다. 위스키와 와인의 엇갈린 운명. 이 격차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황금의 땅에서 침체된 늪으로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10월 위스키 수입량은 1448만5874ℓ로 전년 동기 대비(1454만952ℓ) 0.4% 감소했다. /사진=로이터

2000년대 말까지 ‘황금의 땅’으로 불리던 위스키 시장. 하지만 주류업계 왕좌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10월 위스키 수입량은 1448만5874ℓ로 전년 동기 대비(1454만952ℓ) 0.4% 감소했다. 수입액은 1억894만2000달러(한화 약 1307억원)로 지난해 1억1396만3000달러(1367억원)보다 4.4% 줄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위스키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도 원액은 수입한 후 각자의 방식으로 브랜딩해 판매된다. 위스키 수입량 감소는 국내 위스키 시장이 정체됐음을 알리는 지표다.

올해 수입량 중 연말 물량을 제외하면 위스키 시장의 침체는 확연히 드러난다. 1~8월 위스키 수입량과 수입액은 각각 18.5%, 26.5% 감소했다. 반면 9~10월 위스키 수입량은 404만5095ℓ,수입액은 무려 3447만2000달러(한화 413억원)로 크게 늘었다. 일각에선 9~10월 코로나19가 잠잠해지자 위스키 시장이 연말 특수를 앞두고 과하게 수입량을 늘렸다고 분석했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연말 특수를 내심 기대한 건 사실”이라면서 “그래도 위스키 시장이 급성장할 것 같진 않았다”고 토로했다.
청탁 금지에 울고 코로나에 죽고
위기를 맞은 위스키 시장은 결국 가격 인하·공장 가동 중단·국내법인 철수 등 경영 회복을 위한 몸집 축소에 나섰다. /사진=로이터

위기를 맞은 위스키 시장은 결국 가격 인하·공장 가동 중단·국내법인 철수 등 경영 회복을 위한 몸집 축소에 나섰다. 프리미엄 위스키 ‘임페리얼’로 이름을 날린 ‘드링크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위스키 가격을 15% 인하했다. 고급 주류로 자리매김하던 위스키의 자존심이 내려놓은 것. 올해 초 싱글몰트 위스키 수입업체 ‘에드링턴코리아’는 국내 법인을 철수했다. 국내 위스키 업계 1위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국내 생산 중단 결정과 함께 올 6월 이천 공장 문을 닫았다.

이에 대해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는 “위스키 시장은 10년 전부터 죽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업이 접대비를 줄이기 시작한 뒤 2016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과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회식 문화가 변하면서 소비위축이 심화됐다.

여기에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유입되면서 위스키 업체 경영난은 가속화됐다. 접대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술로서 권위적인 느낌이 강한 위스키를 MZ세대가 기피하는 것.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신다는 MZ세대의 음주 문화는 강압적인 인상을 주는 위스키를 비인기 주류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이후 저도주 선호와 홈술 등 소비 트렌드 변화가 더해지면서 위스키 시장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70㎘로 전년 동기 대비(130㎘) 42.9% 감소했다. 2014년(900㎘)과 비교하면 92.1%나 급감한 것. 주류업계 관계자는 “위스키 판매는 경기와 동행하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유흥 채널보다 가정 채널로 공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와인, 코로나19 최대 수혜자
와인은 코로나19 시기 홈술 트렌드가 떠오르면서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사진=로이터

위스키와 달리 와인은 코로나19 시기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홈술·혼술 트렌드가 확산되며 국내 와인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섰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와인 수입은 매년 증가했다. 2011년 2만6004톤이었던 와인 수입량은 지난해 4만3495톤으로 1.6배 이상 올랐다. 올해는 지난 10월까지 4만264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남은 기간 수입량을 합산하면 전년을 상회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선 와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그 인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진입 장벽 ‘붕괴’… 와인 매출 이끌었다
국내 유통사의 와인 매출은 점점 증가 추세다. /사진=로이터

사실 와인 수입량은 매년 증가했지만 국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국내 주류 유형별 시장 점유율 조사에서 맥주는 45.6%, 소주는 37%를 차지한 반면 와인은 기타 4%에 위스키와 사케 등과 함께 포함됐다. 그만큼 와인은 비주류로 여겨지며 대중적이지 않은 술로 인식됐다. 하지만 독일의 유명 와인박람회 업체 ‘프로바인’이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오는 2021년까지 와인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국가 2위로 한국이 꼽혔다. 실제로 와인 수입량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내 유통사의 와인 매출도 증가했다. 특히 지난 4월 국세청이 스마트CG를 허용하면서 와인은 백화점을 넘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마트의 경우 올 11월까지 와인 품목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롯데마트는 올해 1~11월 와인 카테고리 매출이 전년보다 50% 이상 급증했다. 아울러 편의점 CU의 전체 와인 매출은 ▲2018년 28.3% ▲2019년 38.3% ▲2020년(1~11월) 60.9%로 주류 카테고리에서 전년 대비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 7월 당일 와인 예약 서비스 ‘와인25’를 실시한 GS25는 8월 신장률 62.50%를 보인 뒤 3개월 만에 81.30%를 기록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와인은 폭음, 과음과 다른 천천히 맛을 본다는 이미지가 있어 홈술의 대세로 거듭났다"며 "코로나 시대에 외식이 줄어든 만큼 그것을 대신하는 부띠크 이미지가 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