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네이버웹툰들. (왼쪽부터) 노블레스,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사진제공=네이버웹툰
미운 오리 ‘만화’, 백조 ‘웹툰’ 되다

책상 서랍에 숨겨둔 만화책을 훔쳐보면서 낄낄대다가 날아온 분필에 직격당한 추억은 많은 이들이 공유할 것이다. 한때는 호환·마마 급으로 언급되며 어른의 눈초리를 받던 미운 오리가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는 남녀노소 반기는 백조로 거듭났다. 한국 만화가 웹툰으로 전성시대를 열어간다.

◆인터넷 문화 개척자들이 만들어낸 ‘웹툰’

한국 만화 시장은 초기부터 만화 선진국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적판이 횡행하던 시절을 거쳐 1990년대 일본문화 개방으로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만화 작품이 국내에 쏟아졌다. IMF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국내 만화 출판 사업은 고사 직전까지 갔다.

네이버 웹툰·웹소설 IP 영상화 라인업 /사진제공=네이버웹툰

이때 국내 만화 창작자는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상에서 개인 홈페이지 위주로 창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젊은 층을 위주로 알음알음 인기를 끌던 이 무료 인터넷 만화는 2003년 다음이 ‘만화 속 세상’, 2005년 네이버가 ‘네이버웹툰’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플랫폼을 갖추고 본궤도에 진입했다. 점유율 경쟁을 펼치던 포털도 경쟁적으로 작가를 영입했고 콘텐츠의 양과 질이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세계 최초의 ‘웹툰’ 시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0 만화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만화 이용자 중 디지털 만화만 이용하는 비중은 68.6%에 달한다. 27%가 디지털 만화와 종이 만화 모두 이용하며 4.4%만이 종이 만화만을 이용했다. 디지털 만화 유료 이용 경험이 있는 경우도 43.6%에 달했다.

◆이제 한국은 좁다… 한류 타고 세계로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원대에 올라섰다고 전망됐다. 2010년 1000억원 규모에서 10년 만에 10배 성장을 이뤘다. 나아가 한류 바람을 타고 어느덧 수출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20여년 전과 180도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네이버·카카오 양대 플랫폼사가 앞장서며 글로벌 시장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8월에는 업계 최초로 하루 거래액 30억원, 한 달 거래액 80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 글로벌 이용자 수 7200만명과 유료 콘텐츠 거래액 8200억원을 달성하며 선두를 질주했다. 특히 세계 최대 콘텐츠 시장인 미국에서 MAU(월간 순 사용자 수) 1000만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스페인어·프랑스어 서비스로 유럽·남미에서도 MAU 550만을 돌파했다.

카카오는 국내에서 검증된 작품을 카카오재팬의 웹툰 플랫폼 ‘픽코마’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픽코마’ 전체 작품 중 한국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은 1%지만 이 작품들이 전체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한다. 이에 힘입어 ‘픽코마’는 지난해 7월 트래픽과 매출 모두 일본의 양대 앱마켓에서 비게임 부문 1위에 올랐다. 만화 종주국 일본 시장에서 거둔 성과다.


웹툰을 앞세워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양사의 행보는 거침없다. 네이버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했다. 북미·유럽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매월 9000만명 이상 사용자가 230억분을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플랫폼이다. 사용자 80%가 Z세대로 구성된 ‘왓패드’에서 검증된 웹소설을 웹툰으로 제작하는 등 콘텐츠 강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네이버 관계자는 “웹툰과 웹소설 세계 1위 플랫폼 간 시너지를 내면서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목표로 콘텐츠 전문기업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이달 출범시켰다.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을 합쳐 웹툰·웹소설 등 IP(지식재산)부터 음악·영상·디지털·공연 등 콘텐츠 기획·제작 및 글로벌 플랫폼 네트워크까지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와 장르를 아우른다. 시너지를 목표로 한 인수·합병(M&A)과 투자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영역에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각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웹툰 위상 높아질수록 내실도 다져야

네이버에 따르면 네이버웹툰 정식 연재 작가의 연평균 수익은 3억원이며 작가의 58%가 1억원 이상 수익을 올리고 있다. 웹툰 시장이 성장하고 글로벌 진출도 활발해짐에 따라 인기 작가를 유치하기 위한 물밑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진다. 이런 가운데 국내 웹툰 산업과 제작환경이 좀 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국내 생태계에서 거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IP 밸류체인이 구축됨에 따라 투자 편중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며 “중소 제작사·에이전시·플랫폼에서는 국내보다 해외를 겨냥해 글로벌 IP를 기획·생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웹툰산업협회 관계자는 “IP와 작가 확보에 치열한 분위기다. 작가를 창작자로서 찾는 게 아니라 작화를 위한 단순 기술자로 찾는 업체도 간혹 있다. 주로 데뷔를 준비하는 예비작가나 신인작가가 불공정한 계약 조건으로 착취를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공정계약 정착과 노동환경 개선이 이뤄지고 만화진흥법 개정을 통해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K-웹툰이 한류 대표 문화상품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과거 웹툰 플랫폼의 형성이 1차 성장기였고 현재는 웹툰 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2차 성장기라고 본다”며 “글로벌에 진출한다는 것은 반대로 글로벌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웹툰 종주국으로서 위치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관심과 기회를 주면서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신의탑, 스위트홈, 갓 오브 하이스쿨 /사진제공=네이버

아랍에미리트서 “아이 ♥ 김비서”… ‘한국판 마블’ 출격 시동

K-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IP(지식재산권)로 자리 잡았다. 국내 웹툰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 2차 콘텐츠가 연이어 승승장구하면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스위트홈’과 ‘승리호’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K-웹툰은 어떻게 글로벌 흥행 보증수표로 주목받게 됐을까. 2013년 웹툰 플랫폼이 네이버 주도로 수출될 당시만 해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K-웹툰의 성공 비결을 살펴봤다.
◆‘웹툰→영상화→웹툰’ 선순환 구조 구축… 국내 매출 규모↑

국내 웹툰 IP의 세계적 인기는 사실상 ‘스위트홈’을 통해 증명됐다. 네이버웹툰 ‘스위트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넷플릭스 시리즈는 지난해 전 세계 흥행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국내 웹툰 IP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양한 2차 콘텐츠가 글로벌 성과를 거뒀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신의 탑’은 미국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 내 주간 인기 애니메이션 랭킹에서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시즌 4’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드라마로 재탄생한 ‘이태원 클라쓰’는 일본 내 넷플릭스 인기 랭킹에서 수개월 간 상위권에 머물렀다.

K-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IP(지식재산권)로 자리 잡았다. /사진제공=네이버웹툰

국내 웹툰의 글로벌 위상은 과거와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웹툰이 번역을 통해 해외에 출판되는 것으로 만족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웹툰 하면 한국을 떠올린다”며 “출판이나 영상을 리메이크하는 것이 아닌 웹툰 원작 그대로를 사용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하는 투자 모델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도 “지난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아랍에미리트·영국·프랑스 등 3개국 독자를 위한 ‘해외문화원 연계 웹툰 온라인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아랍에미리트 독자들은 국내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이태원 클라쓰’에 열광했다”며 중동·유럽 국가에서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국내 웹툰 시장의 매출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웹툰IP 시장 규모가 지난해 기준 1조원대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네이버웹툰만 해도 지난해 스위트홈 흥행으로 역대 최고 거래액인 8200억원을 기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작 웹툰의 인기가 영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영상화 이후에는 원작을 찾아보는 독자가 또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의 구축이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고 귀띔했다.

◆美 “히어로물은 이제 질려!”… K-웹툰 성장 비결은 ‘다양한 장르’

K-웹툰은 웹툰 종주국으로 다져진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국내 웹툰의 글로벌 진출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네이버웹툰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면서다. 이는 사실상 세계 첫 웹툰 플랫폼이었다. 이어 2014년에는 미국과 대만 시장, 2019년에는 프랑스와 스페인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없던 웹툰 저변을 확장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2019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진출을 본격화했다.

권창호 사무국장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지면서 웹툰 작가는 무제한급 지면을 가지게 됐다. 전 세계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서범강 협회장은 “척박하고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던 해외시장을 수없이 조사하고 분석해 각 나라별 특성에 맞는 서비스 방향과 공략법을 연구한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선두기업의 발빠르고 과감한 실행도 효과적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지 시장과는 차별화된 국내 웹툰만의 다양한 장르가 성공에 견인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로맨스물·학원물·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가 갖춰져 있는 게 국내 웹툰의 인기비결”이라며 “슈퍼히어로 장르 위주로 발달한 미국 만화 시장에서 국내 웹툰은 신선한 주제와 흥미로운 구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플랫폼별 각국의 인기 콘텐츠를 통해서도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여신강림(네이버·로맨스) ▲외모지상주의(네이버·드라마) ▲신의 탑(네이버·판타지) ▲템빨(카카오엔터·판타지) ▲나 혼자만 레벨업(카카오엔터·판타지)이, 미국의 경우 ▲여신강림 ▲외모지상주의 ▲신의 탑 ▲사내맞선(카카오엔터·로맨스) ▲왜 이러세요 공작님!(카카오엔터·로맨스)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카카오엔터·로맨스 판타지) 등이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다음웹툰 웹툰마켓과 유료결제 이미지 /사진제공=카카오엔터테인먼트

◆‘한국판 마블’ 탄생할까… 작가 처우개선 대책 마련해야
국내 웹툰 업체는 경쟁력 있는 IP를 기반으로 향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한국판 마블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카카오가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 양사의 합병 절차를 완료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공식 출범하는가 하면 네이버웹툰이 ‘Vertigo Entertainment’ ‘Bound Entertainment’ 등 다수의 미국 콘텐츠 제작사와 손잡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글로벌 성장을 위해선 사업의 중심에 있는 웹툰 작가의 처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웹툰협회가 지난해 636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불공정 계약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50.4%가 ‘그렇다’고 답했다. 창작자-웹툰 에이전시-플랫폼으로 연결되는 복잡한 계약 구조로 인한 저작권 갈등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웹툰 IP를 기반으로 2·3차 콘텐츠도 제작되면서 이 같은 저작권 문제는 더 복잡해진 상황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현재도 일부 업체가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신규 연재 계약을 체결하는 작가들에게 2차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권리를 양도하게끔 하는 계약을 요구해 분쟁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서범강 협회장은 “불공정 거래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다면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불공정 거래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제공하는 측과 제공받는 측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양측의 입장이 균형 있게 잘 반영된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분쟁과 대립보다는 서로의 상황과 입장 및 현실적인 여건 등을 잘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충분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