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하림 사옥. /사진제공=하림
2010년대 초 파이시티 정·관계 인·허가 로비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서초구 양재화물터미널 부지 개발사업이 다시 표류 위기에 놓였다. 시행사 파이시티가 도산한 후 새 사업자로 등장한 하림은 이곳에 ‘도시첨단물류단지’를 조성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때마침 정부의 개발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정부는 2015년 도시첨단물류단지 제도를 도입하고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물류시설법)을 개정해 물류단지의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비율)을 기존(400%)의 곱절인 800%로 허용했다. 이에 따라 하림은 70층 높이의 건축을 추진했다. 하지만 양재동 일대는 만성적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데다 도시계획 상 고밀 개발이 불가하다는 서울시와 부딪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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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층 개발 왜 안 되나”━
도시첨단물류단지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언택트(비대면) 시대의 필수 인프라로 떠올랐다. 하림은 “서울시의 도시 경쟁력은 물론 시민 삶의 질과 편의 향상을 위해 물류·유통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며 사업의 시급성을 주장하고 있다.도시첨단물류단지는 화물차 운송 거리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뿐 아니라 화물운송 증가에 따른 교통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물류시설법 개정에 이어 2016년 국가계획인 ‘제2차 물류시설 개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림은 정부 시책에 따라 용적률 800%, 최고 70층 높이의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지만 서울시는 ‘과잉개발’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림이 사업부지를 매입한 시기는 2015년. 양재IC 인근 양재동 225번지 일대 9만4949㎡ 부지를 4500억원에 매입한 하림은 이듬해 2016년 5월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이어 2016년 6월 국토교통부는 양재 부지를 도시첨단물류 시범단지로 선정했다. 같은 해 7월엔 제2차 물류시설 개발 종합계획 변경안에 반영했다.
여기서 하림과 서울시가 맞섰다. 하림은 도시물류 수요의 증가와 유통·물류·정보통신 산업 간 융합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일반 물류시설 대비 3~4배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도시첨단물류단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부 역시 같은 취지로 제도적 지원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의 입장은 정반대다. 하림이 조성사업을 위해 땅을 매입한 시점은 2015년이고 당시엔 용적률 400%도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하림이 사업부지 매입 1년이 지난 시점에 정부 시범단지로 지정되자 무리하게 용적률 800%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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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높아 과거에도 인·허가 비리 넘쳤다”━
양재화물터미널 부지는 2006년 시행사 파이시티가 매입해 지하 6층~지상 35층의 물류시설과 오피스·쇼핑몰 등을 아우르는 복합유통센터를 건설하려던 프로젝트로 당시 총 사업비는 2조4000억원 규모였다. 사업 과정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2011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됐고 2012년 이명박 정부 실세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의 정·관계 인·허가 로비가 드러나 관련자가 줄줄이 구속됐다.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검찰 수사 결과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수억원의 돈이 오갔다”며 “용적률이 400%였던 과거에도 이 같은 인·허가 비리 문제가 드러났던 만큼 사업성이 낮다는 건 하림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양재IC 일대 부지는 2004년 수립된 ‘양재택지 지구단위계획 구역’ 내 위치한 곳으로 15년 이상 용적률이 400% 이하로 제한됐다. 일대 상습적인 교통 정체 문제도 그 이유다.
이뿐 아니라 서울시는 양재 연구·개발(R&D) 혁신지구 조성에 양재화물터미널과 LG·KT 연구시설 부지를 핵심적인 공간으로 보고 민간 개발의 관리방향을 규제하고 있다.
서울시는 정부 방침에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구단위계획의 입안권자가 지자체장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시 차원의 도시계획에 따라 시장이 직접 입안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2016년 양재 부지 시범단지를 선정하던 당시 개별사업에 대해 지정권자가 지역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그럼에도 하림은 서울시가 융통성이 결여된 정책으로 민간 사업자에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키고 경제효과가 높은 사업의 사업성을 저해한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를 진행해 현재 본감사가 이뤄지고 있다.
양재 부지는 1982년 일반상업지역으로 지정돼 유통업무설비를 지을 수 있다. 일반상업지역 용적률은 최대 800%가 허용된다. 일반상업지역 지정은 용적률 완화가 아닌 유통업무설비 건립을 위한 목적이란 게 서울시 주장이지만 변화하는 도시의 성격과 물류 증가에 따라 민간 영역의 사업 참여가 제한돼선 안 된다는 우려도 커진다. 물류시설법 상 공공기여 25%를 활용한 도로 확장 등의 대안 역시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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