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 이씨가 숨진 채 발견된 기숙사 휴게실. © 뉴스1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모씨 사망 사건을 놓고 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연맹과 학교 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노조 측은 서울대 갑질이 청소노동자 이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는 주장인 반면 학교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조만간 반박 입장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11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서울대는 숨진 이씨가 과로와 갑질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부 자료를 만들었다.
이씨의 근무처는 격무지가 아니며, 시험·복장강요 등의 직장 갑질 의혹도 실제 상황과 다르다는 내용이다.
서울대는 조만간 이를 토대로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할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이씨가 휴식을 취하던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 휴게실. © 뉴스1/한상희 기자
앞서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로 근무하던 50대 여성 이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과 민주노총은 지병도 없던 50대 여성이 갑자기 사망한 것은 힘든 노동 강도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100ℓ 쓰레기 봉투로 매일 4개 층의 6~7개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날라야 했다고 한다.
동료들은 새로 부임한 관리팀장이 복장을 강요하고 시험을 치른 뒤 점수를 공개하는 등 청소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공개한 시험지에는 '우리 조직이 처음 개관한 연도' '919동의 준공연도' 등을 묻는 질문과 함께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시오' 등의 문항이 적혀 있다.
민주노총은 "우리는 위생원이 아니라 직접 고용된 직원인데도 서울대 총장은 고인의 장례식장도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서울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노조 관계자들이 현장에 있던 교직원들에게 "사람이 죽었는데 조문은 오셨나고요"라고 말해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대가 공개한 지난달 25일 3차 회의 내용.. © 뉴스
반면 서울대는 노조의 주장이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특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노조 측 주장에 "숨진 이씨의 근무처는 오히려 노동강도가 훨씬 적었다"는 입장이다.
또 관리팀장, 일반 행정직원이 실제 청소를 해본 결과 평일 기준 100ℓ 봉투 1~2개밖에 발생하지 않았으며, 대학본부 미화원의 경우 1일 평균 100ℓ 8~20개를 처리해 과도한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시험에 대해서는 "청소원 대상 직무교육이었으며 시험을 치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는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아 2번 만에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으며,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선호했다고도 강조했다. 지난달 25일 3차 회의 당시 동료 청소노동자가 "시험치는게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자, 이씨는 "2019년에 기숙사에 들어와서 처음 이런 교육을 받게 돼 너무 좋았다"고 했다는 게 서울대 측 입장이다.
교직원들이 조문을 오지 않았다는 노조 측 주장에 대해서도 "교육부총장은 물론 학생처장이 조문을 갔다"며 "당시 사람이 없어 일부 교직원들이 직접 운구까지 도왔다"고 일축했다.
서울대는 관리팀장이 복장을 갖추지 않은 경우 모욕감을 주고, 볼펜 메모지를 지참하지 않을 경우 감점을 주는 등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주장에도 "관리팀장에게는 인사권이 없으며, 청소원 평가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씨도 관리팀장의 카카오톡에 감사를 표현하며 답했다"며 "관리팀장이 청소 노동자들에게 단정한 복장을 입으라고 한 것은 회의 후 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편의를 고려한 것이지 강요사항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복장 강요 논란이 됐된 관리팀장 카톡 내용. (서울대) © 뉴스1
이씨의 유족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씨의 남편은 통화에서 "서울대 측으로부터 유족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이게 서울대의 윤리관이고,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제 아내의 발언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평소 바른 말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시험 본 게 너무 기뻤다고 이야기했을까"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어 "아내로부터 시험을 봤다는 건 들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인 줄은 몰랐다"며 "아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까다로운 근무를 하기 힘들겠다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이씨의 남편은 "을인 입장에서 동료직원들이 모멸감을 받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기 어렵지 않겠나. 자기들이 결론을 내린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며 "아내의 동료들에게 어떤 일들을 했는지 알았다면 그때 (빈소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과연 했을까. 내가 제정신인가 싶다"라는 심경을 전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대학원생 총학생회는 10일 "학교는 청소 노동자 죽음을 외면 말고 근무환경 개선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인권센터에 제출할 연서명을 받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가운데 서울대 학생처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학생처장은 지난 9일 페이스북 계정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며 "민노총이 개입하면서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적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학생처장은 "역겹다는 대상은 청소 노동자분들이 아니라 대선주자들이 이 사안을 그렇게 유통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고인이) 삐뚤삐뚤 쓰신 답안지 사진을 보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고 적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