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스틸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데뷔작 '겟 아웃'(2017)과 두 번째 작품 '어스'(2019)로 관객들에게 독창적 공포를 안겼던 조던 필 감독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한국 관객이 키운 감독이라 해서 '조동필'로도 불리는 조던 필 감독 신작의 제목은 '놉'(Nope). '어스'(US)에 이어 또 한번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제목의 '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현상을 그린 영화로, 지난 17일 개봉했다.
'놉'은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은유에 대한 갖가지 해석을 낳으며 마니아층 관객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영화 관람 이후 캐릭터부터 미장센까지, 관객들 각자 이뤄낸 해석과 분석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특히 이번 작품은 SF 외피를 두른 기발한 상상력으로 던진 메시지가 더욱 다채로운 해석을 낳고 있어 마니아층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극 초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대상을 통해 관객들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점차 그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겟 아웃'은 주인공이 백인 여자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분위기로, '어스'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던 해변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로 공포를 안겼다면, '놉'은 하늘에 뜬 의문의 비행접시 형체로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간다.
놉 스틸
미스터리한 비행접시 형체를 띄운 '놉'은 일견 SF 장르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앞선 두 작품보다 내용 면에서, 그리고 메시지 면에서도 조금 더 마니아적이다. '겟 아웃'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메시지를, '어스'에서는 배타주의의 메시지를 전했다. '놉' 또한 마찬가지로 갖은 은유를 통해 조던 필 감독이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건드리지만, 이는 '영화 산업'에 대한 주제 의식에 더 가깝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그 메시지를 구현해가는 방식에 있다. '놉'은 직접적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들이 백인들이 주류가 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소외돼 왔다는 사실을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흑인 역시도 주목받고 싶은 욕망은 주인공 OJ(다니엘 칼루야 분)의 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 분)의 캐릭터에서도 드러난다.
이 산업에서 소외된 이는 흑인뿐만이 아니다.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 분)은 아역 시절 할리우드에서 소비 당하고 버려진 과거가 있는 인물로, 그 역시도 주류에서 비켜나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침팬지 고디와 말 럭키 또한 동물들이 영화 산업에 처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같은 비인격적 상황과 대치돼 있는 위치에서 배회하는 비행물체의 괴생명체는 하나의 눈, 카메라로 비유되며 영화 산업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로도 이어진다.
영화는 무성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움직이는 말', 서부극이 연상되는 광활한 말 목장, 리키 주프 박이 운영하는 곳으로 말과 함께 일종의 쇼가 펼쳐졌던 놀이공원까지 '스펙터클'에 대한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또 영화 초반 등장하는 구약성경 나훔 3장6절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와 한 시트콤 세트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교차되면서 '쇼'의 비극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 한 맥락이 읽힌다.
'놉'은 조던 필 감독의 데뷔작인 '겟아웃'보다 더 의미심장한 상징과 다층적인 레이어에 둘러싸인 작품이다. 대중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명쾌하거나 직관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난해하고 낯설면서도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남긴다. 마니아층은 다양한 해석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를 갖는 부분이다. 상상력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존재들을 통해 입체적인 의미가 생성되고, 메시지에 도달해가는 과정은 조던 필 감독이 앞으로는 또 어떤 깊이의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이에 '놉'은 대중성 면에서는 '겟아웃'에 비해 더욱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겟아웃'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통계 집계 기준 213만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했다. '어스' 또한 반향이 큰 작품이었지만 성적 면에서는 '겟아웃' 보다 적은 147만 명의 누적관객수로 집계됐다. '놉'은 개봉 이틀째 기준인 18일에 약 9만5000여명의 누적관객수를 달성, 10만 명은 넘지 못했다. '놉'이 전작들보다 마니아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지, 향후 흥행 추이에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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