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사업자, 무자격 중개보조원 '전세사기' 뇌관 돼
잠자고 있는 자격사들, 개업 시엔 의무교육 강화할 것
고의 사고 낸 공인중개사 공제 불허해 '업계 퇴출' 추진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이 지난 1월 머니S와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 거래질서를 지키는 공인중개사 직업윤리를 회복하고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겠다고 밝혔다. /사진=장동규 기자
국민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경제활동이 된 부동산 거래 계약이 연간 350만건(2020년·기준금리 인상 전 기준)이나 발생하는 가운데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공인중개사' 제도가 출범 약 40년 만에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13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종혁 회장(사진·56)은 취임 첫해 업계 숙원사업이던 협회의 법정단체화를 추진했고 같은 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성남분당을)이 발의, 현재 상임위원회에 계류돼있다.


이 회장은 취임 1주년을 맞는 지난 1월 머니S와의 인터뷰를 통해 협회가 법적 자격을 강화하고 부동산 거래질서의 안정성을 보호하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단체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수도권 외곽만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사무실 간판에 '땅 매매' '주택 임대' 등이 내걸려 있다"며 "대부분 이들이 법적 자격을 갖춘 공인중개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부동산 사무실 간판엔 '공인중개사'라는 이름을 넣어야 한다"며 "무고한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확인하고 부동산 거래를 하길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부동산 가격이 수요 공급에 의해 오르내리는 것이 정상인데 일부 투기 세력에 의해 아파트값이 급등했고 부녀회마저 나서서 개업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는 불법거래를 한다"며 "지난해 전국을 흔들고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전세사기꾼'(속칭 빌라왕) 사태는 중개보조원이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사기 거래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법적 공인중개사를 통해서만 부동산 거래를 해야 한다"면서 "당초 정부가 중개사를 법적 자격사로 만든 것이 이 같은 이유지만 수십 년의 경제성장에도 100% 현실화가 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10건 중 4건, 중개사 없는 '불법거래'
공인중개사 제도는 1984년도에 '부동산중개업법'(현 '공인중개사법')이 제정돼 도입된 이후 40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거래의 40%는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지적이다. 특히 토지 거래의 경우 80%가 공인중개사 없이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회장은 "수 년 전 사회적 논란이 된 기획부동산과 최근의 사건인 전세사기 모두 대행이란 명목으로 수십~수백 명이 길가 벽에, 전봇대에 광고 전단지를 붙여 불법거래들로 이어졌다"면서 "이제는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거래시장의 주체가 돼 질서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법에 체계화돼 있지 않은 부분으로 법 개정의 필요성이 생겼고 법정단체화를 추진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 어떻게 막나
전세사기의 구조적 문제를 보면 신축 빌라 분양대행사 등이 가격을 수 억원 부풀려 분양 또는 임대를 하고 건축주에게 일부 이익을 제공해 이윤을 남겼다. 지역 내 공인중개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를테면 공인중개사가 해당 지역의 지회에 불법성 거래나 거래 시도의 사실을 알리고 적극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협회는 법정단체가 아니어서 이를 회원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적 자격이 있는 공인중개사가 불법 거래에 연루됐던 사실이 드러났듯 개인의 일탈 등 모든 도덕적 해이를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점도 있다. 이 회장은 "법이 모든 불법행위를 다 통제할 순 없다"면서 "궁극적인 목적은 큰 틀을 만들어놓고 나머지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지켜내고자 하는 도덕성과 의무감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회가 회원들로 하여금 부동산 거래질서를 지키자는 사명감을 줘야 한다"며 "협회에 힘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특히 공인중개사 윤리강령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협회는 윤리강령 개정 작업에 들어가 중개사고를 고의로 발생시킨 회원에 대해 공제 가입을 불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제에 미가입된 공인중개사는 업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협회가 받아주지 않으면 SGI서울보증으로 갈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서울보증과 협의해 고의 사고 중개사를 퇴출시키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동규 기자
"수익성 안정돼야 유혹에 안 흔들려"
협회에 따르면 전체 중개거래 가운데 손해배상책임공제 사고의 70%는 영업 1~5년차 이내 개업공인중개사에 해당한다. 이 회장은 "개업 5년 이내 공인중개사가 법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수입이 불안정하다 보니 불법거래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현재 공인중개사 개업은 10~20년 전 자격증을 딴 사람도 32시간 실무교육만 받으면 할 수 있다. 개업공인중개사는 2년마다 한 번씩 12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1년차나 10년차나 교육 내용이 같다.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교육이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해마다 2시간 이상 교육을 실시하거나 실무교육 주기를 앞당기는 방법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수십 년 동안 실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32시간 교육만 받고 공인중개사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격증만 따고 개업을 안한 경우 2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12시간 의무교육을 실시해 자격 유지의 조건을 강화하고 교육 미이수자의 자격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개보조원 수 제한할 것"
거래 규모 대비 많은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수도 문제로 지적됐다. 협회 조사 결과 현재 공인중개사 수는 약 52만명으로 인구 100명당 중개사 수가 1명꼴이다. 이 중 11만8000명이 개업을 하고 있다.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 회장은 "전세사기 등 사고가 발생한 원인 중엔 중개보조원 수 제한이 없는 문제점도 있다"며 "하나의 사무실에 중개사 1명, 보조원 20명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중개보조원이 부동산 거래질서를 흐려놓는 문제가 있는 만큼 중개사당 3명 안팎으로 보조원 수를 규제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만약 인력이 부족하다면 보조원이 아닌 중개사를 더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인중개사 자격사 시험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는 시험 점수 60점 이상이면 합격할 수 있는 절대평가 방식인데 상대평가로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국토부가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20년 전에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에게 공인중개사의 자격과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 고민해보면 자격 시험은 개업할 사람들만 보는 것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공인중개사업계와 플랫폼업체 사이에 분쟁이 된 이른바 '반값 중개'에 대해선 일종의 마케팅 기법으로 향후 보수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봤다. 이 회장은 "현행 중개보수율 0.4~0.7%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지난 수 년 간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해 10억원짜리 아파트 매매 중개보수가 개정 이전 기준 900만원이다 보니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개보수를 다시 올리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플랫폼 기업의 반값 중개는 카카오나 배달의 민족이 시장 진입 초기에 무료 서비스를 했다가 독과점 형성 후 가격을 올리는 방식과 유사하다. 중개보수 역시 마케팅을 목적으로 일시에 낮췄다가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짜 중개업소 간판 규제 강화해야"
이 회장은 "공인중개사라는 직업 자체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서 "중개사들이 더 공부하고 전문화하도록 자격증만 취득하고 끝날 게 아니라 여러 소양과 법적 지식을 교육하는 전문 중개사 과정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당국에 당부의 말도 전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공인중개사로 오해할 수 있는 '간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자격증 없는 자들이 버젓이 '부동산 컨설팅'이란 간판을 걸고 중개거래를 한다"며 "이 때문에 부동산 사무실은 모두 공인중개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속게 되고 피해가 발생해도 법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