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출강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출강 = 지금 평양에서 산업미술전시회가 한창이다.
2월9일부터 3월9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이번 평양시산업미술전시회는 전국에서 작품들이 출품되는 국전(國展)의 위상은 아니지만, 북한의 수도 평양시에서 주최하는 디자인전시여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2월 광명성절(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경축하는 평양시와 도별 디자인전시회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진행된 바 있어 그리 특이한 소식은 아니다. 보통 평양시에서 산업미술전시회가 열리면 각 도 인민위원회 산하 산업미술국 관계자들과 지방 공장, 기업소 소속 도안창작가, 교육가들이 몰려와 참관하곤 한다. 지방공업과 도안 교육 관계자들에게는 패션뿐만 아니라 제품의 포장·상표, 환경장식 디자인의 모범답안이 혁명의 수도 '평양스타일'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2023년 평양시산업미술전시장(2023. 2. 9 ? 3. 9) 내부 전경. 올해 평양시 디자인전시회는 녹색건축장식 모형들이 대거 등장해 참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미지 출처: 조선중앙TV 제작,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홍보영상 캡쳐

올해 평양시산업미술전시회에는 김정은 총비서가 지도한 330여 점의 도안들과 시 19개 구역에서 출품한 630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견본제작실’이 갖춰진 평양시산업미술국 주최 전시장에는 많은 공업 및 건축모형, 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조선중앙TV 제작,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홍보영상 캡쳐

올해 평양시산업미술전시회는 북한의 디자인 발전 면모를 과시하고 사회적 관심을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다고 당 기관지는 소개하였다(노동신문, 2023년 2월11일). 이번 전시에서는 디자인 작품들의 내용과 형식도 중요하겠지만, 주최 기관의 작은 변화들도 주목해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첫 번째로 평양시에 시립 디자인 전용 전시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올해 전시는 중앙급 전시장인 평천구역 '국가산업미술중심(국립디자인센터)'이 아닌 새로 마련된 단층의 널찍한 '평양시산업미술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장의 간판이 입체형으로 고정 설치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 공간은 임시공간이 아닌 평양시 상설 전시장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평양시 평천구역에 위치한 국가산업미술중심(국립디자인센터) 건물(우). 이 건물은 북한디자인을 총괄하는 중앙산업미술국의 건물로 전시장은 1-2층에 있다. 올해 공개된 평양시산업미술전시장 외부 전경(좌) 출처: 조선중앙TV 제작 2021년 10월 국가산업미술전시회(우), 2023년 평양시산업미술전시회 홍보영상 캡쳐(좌)

평양시산업미술전시장의 위치는 언론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송화만경정보기술보급실' 간판이 아래층에 달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2022년 4월 완공된 송신·송화지구에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형태와 타일 마감재의 색상이 전시장이 송신·송화지구 안에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송신·송화지구에는 1만 세대 살림집뿐만 아니라 공공건물, 봉사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 지구에 평양시 디자인전시장이 소프트웨어 개발과 IT 정보를 보급하는 만경정보센터 송화지부에 근접해 배치된 것은, 최근 북한이 산업현장에 디자인 정보를 제공하는 봉사사업과 디지털 데이터 정리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것(노동신문 참조, 2023년 2월3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작은 변화는 평양시산업미술전시장의 로고를 붓과 디자인의 영문 이니셜 'D'를 응용해 조심스럽게 형상화하였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도 산업미술을 해외에서 'design'으로 부르다는 것은 이 분야 전문가들도 알고 있다. 과거 <조선산업미술>(2016년 제4호)에서 실린 강좌에서 "첨단으로 발전하는 오늘 세계적으로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Design이라는 술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라며 디자인을 소개한 적이 있다.

본인이 평양시산업미술장시장의 로고 도안의 창작 의도를 오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인 전공자이자 북한디자인 70년을 연구한 입장에서 이는 흥미로운 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시기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10년 동안에도 국제행사가 아닌 내부기관의 공식 마크를 영문 이니셜을 사용해 만든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WIPO에 등록된 북한의 국제상표에서도 상호명이 아닌 영문 이니셜을 응용한 마크 도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서 이 작은 디자인은 영문 활용의 특별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에서 '경제 강국의 염원'과 함께 디자인이 '척후대'로서 사회 전면에 등장한 이후 굵직한 산업미술전시회들이 더 자주 열리고 있다. 북한에서 열리는 디자인전시들은 당의 문화예술 및 공업 정책뿐만 제조 수준과 상업 활동, 주민들의 생활상, 지역의 특성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일반인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올해 평양시산업미술전시를 살펴보면서 '행정기관까지 왜 이렇게 디자인을 강조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사회주의 모범도시라고 일컫는 평양에서 시작되면 지방까지 산업미술정책들이 영향을 미칠 텐데'라는 생각까지 머리에 떠올랐다.

평양시의 변화가 성과 과시가 아닌 지방공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