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물량을 떨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 살포되는 분양(계약)촉진비(마케팅 비용)는 결국 건설회사에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그래픽=이미지투데이
(1) 강남역에 나타난 호객꾼… "계약하면 7000만원 드려요"
(2) 10년 전 '자서분양' 악몽, 실적 부풀리기 뇌관될듯
(3) "70%가 공실" 지식산업센터 골칫덩이 전락
#. 2월의 어느 평일 낮 서울 강남역. 양손에 사은품 가방을 들고 행인 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10m 간격으로 이어져 있다. 바로 앞 건물에서 운영 중인 모델하우스에서 분양 상담을 받도록 하려는 호객 행위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모델하우스에 방문하려고 사전예약을 하고 줄서 대기하던 모습과는 대조된다.
미분양 뇌관이 폭발 직전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으로 아파트 할인분양과 건설업체 도산이 잇따랐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마저 거론될 정도의 위기감이 돈다.
정부가 집계한 공동주택(아파트·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등) 미분양 가구 수는 2022년 12월 말 기준 6만8107가구. 불과 1년 새(2021년 12월 1만7710가구)보다 284.6% 늘었다. 이 기간 ▲서울(54가구→953가구) 1664.8% ▲인천(425가구→2494가구) 486.8% ▲경기(1030가구→7588가구) 636.7% 등 수도권(1509가구→1만1035가구)에서만 631.3%나 급증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의 공동주택 미분양이 눈에 띄게 늘었다. 40㎡(이하 전용면적) 이하의 미분양 물량은 같은 기간 1710가구에서 2421가구로 41.6% 늘어난데 비해 85㎡ 초과 미분양의 경우 1019가구에서 7092가구로 596.0% 증가했다.
그나마 이 같은 미분양 물량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청약을 진행한 공동주택에 한해서만 확인된 통계여서 임의분양이 가능한 30가구 이하 공동주택이나 다세대주택(빌라) 등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건설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특히 공급업체가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은 미분양 물량도 상당수에 달할 것이란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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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분양(계약)촉진비, 실적 악화 원인될 수 있어━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청약을 진행한 전국 11개 단지 가운데 8개 단지가 '미달'됐다. 청약시장 한파 속에 시행사들은 금융지원을 통해 미분양 해소에 나섰다. 특히 공급 폭탄으로 장기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 대구에선 금융지원뿐 아니라 할인분양이 줄을 잇고 있다.지난 1월 입주한 대구 수성구 '시지 라온프라이빗'(207가구)은 입주 지원금 7000만원과 중도금 무이자, 시스템에어컨 4대 무상시공 등 8500만원 상당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 서구 '두류스타힐스'(840가구)는 분양가 10% 할인과 중도금 무이자, 선착순 계약자에게 축하금 400만원과 공기청정기를 증정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이 불황 때는 대규모의 분양촉진비를 풀어 대행사 직원이 건당 수천만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미분양분 계약자를 찾기 위해 스팸 문자 보내기나 길거리 호객 행위를 한다"며 "할인분양이 계약률을 높이는 효과가 더 크겠지만 기존 계약자와 분쟁을 우려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양(계약)촉진비와 할인분양은 결국 건설업체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공능력 25위 한신공영은 지난해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한 '포항 한신더휴 펜타시티'(2192가구) 지난해 말 분양률을 80%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2021년 11월 분양한 포항 한신더휴 펜타시티는 한신공영이 자체사업으로 진행해 미분양 해소를 위한 계약촉진비를 늘리면서 판관비가 급증했다. 분기별로 3~5%를 유지하던 한신공영 판관비율은 지난해 3분기 10.8%까지 치솟았다.
판관비를 비롯해 원자재가격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한신공영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1조2460억원, 340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0%, 23.8%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4억원에 그치며 겨우 적자를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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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가 주거시설 결국 무너졌다━
2021년 하반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거래가 감소하고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자산가를 타깃으로 한 고가 주거시설은 잇단 완판에 성공해 불황을 피해간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향후 사업성을 우려해 대출 연장에 부정적인 상황이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청담동의 A오피스텔은 3.3㎡당 2억6000만원대 고가 분양에도 지난해 6월 펜트하우스를 제외한 완판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지난해 12월20일 만기가 도래한 브리지론 원리금 1500억원을 상환하지 못했다. 현재 시행사는 가까스로 브리지론을 연장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 주차장 부지를 주거시설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대출을 상환하지 못했다. 시행사는 지난해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대출금 221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 호황기에 건설업체들이 수익성 높은 재개발·재건축이나 직접 시행을 하는 자체사업을 늘리면서 공공공사와 해외 수주 비중을 줄여 공급 폭탄이 터졌고 미분양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떻든 미분양을 떨어내기 위해 분양촉진비를 쓰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할인분양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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