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가에서 상표권 관련 소송전이 불거지면서 과거 유사 분쟁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같은 듯 다른 듯한 LG생활건강 '베끼기' 논란
②"개발비 왜 쓰나, 베끼면 되지"… 도 넘은 식품업계 '미투 마케팅'
③유명하면 위험하다? 원조가 패소하는 이상한 '상표권' 소송
최근 농심가(家) 신동익 메가마트 대표와 이제훈 홈플러스 대표가 '메가푸드마켓' 상표권을 둘러싼 소송전에 돌입한 것을 계기로 식품업계의 과거 유사 분쟁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오리온의 경우 '오리온 초코파이'로 상표권 등록을 했지만 다른 업체들이 '초코파이' 단어를 사용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유명세를 타자 일반 명칭처럼 사용된다는 이유로 상표에 대한 권리가 상실된 대표적인 사례다. 상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보통 명칭화'가 되면 고유의 식별력을 잃기 때문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메가푸드마켓 사용마라"… 메가마트 vs 홈플러스 '법정공방'
메가마트와 홈플러스가 '메가푸드마켓' 권리범위확인에 대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메가마트 부산 동래점 전경. /사진=메가마트
지난 3월2일, 농심 창업주인 고 율촌 신춘호 회장의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대표(부회장)는 홈플러스 이제훈 대표를 상대로 특허법원에 '메가푸드마켓 권리범위확인'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은 1억원. 양사의 갈등은 홈플러스가 지난해 2월 인천에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1호점을 열면서 시작됐다. 당시 메가마트는 홈플러스에 상표 사용을 중지하라는 경고장을 보냈다.
메가마트는 1975년 농심그룹이 동양체인을 인수해 설립됐으며 1981년 농심가로 슈퍼마켓사업에 처음 진출한 유통업체다. 1995년 부산에 대형 할인점을 내며 '메가마켓'이란 상호명을 썼다. 이후 '메가마트'로 변경했다. 메가마켓과 메가마트 모두 상표권으로 출원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7월 특허심판원에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상표 사용이 '메가마켓' 상표의 권리 범위 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심판을 제기했다. 1심격인 특허심판원은 메가마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며 홈플러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메가마트는 특허심판원은 법원의 결정이 아닌 행정부 소속의 심판원 판결이라며 2심인 특허법원에 '특허심판원의 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메가마트는 지난해 4월7일 '메가푸드마켓' 상표권을 출원해 심사 중이다. 홈플러스도 같은 해 6월17일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상표권을 출원, 현재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메가마트와 홈플러스가 '메가푸드마켓' 권리범위확인에 대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북수원점 내부 전경. /사진=홈플러스
메가마트 관계자는 "메가마트가 지난 수십 년간 다져온 신선식품 부문과 매장 슬로건으로 사용 중이던 고유 명사가 혼동을 일으키고 있어 매우 당혹스럽다"며 "대형할인마트업과 대규모 도소매업에서 '메가'는 국내 일반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식별력이 있는 상표"라고 주장했다. 이어 "통상 유통사 간 상호 지적재산권에 대해선 존중하고 혼동되는 것은 사용치 않는 게 상례인데 더구나 동일 업종 경쟁사가 오랫동안 독자 브랜드로 사용 중인 상호를 단순 명사라고 지칭하는 점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 보호 근본을 뒤흔드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홈플러스는 특허심판원의 판단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한 메가마트의 주장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메가마트가 특허법원에 제기한 메가푸드마켓 상표권 권리 확인 소송과 관련, 절차에 맞춰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메가'는 빅이나 그랜드와 같은 크다는 의미의 일반용어로 독자적인 변별력을 가지지 않는다"며 "메가마켓과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중 브랜드 인지도도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이 월등히 높아서 농심 메가마켓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은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초코파이·불닭 등 원조의 잇단 패소… 왜?
메가마트와 홈플러스가 상표권을 둘러싸고 법정공방까지 가면서 과거 유사 사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상표가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상표권을 상실한 '원조' 상표들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표 제도는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 신용 유지를 도모해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표를 등록하면 상표권자는 상표에 대한 독점권과 금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상표권자는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관해 사용할 권리를 독점하며 타인이 등록상표와 같거나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상표권 등록을 했더라도 지정상품에 대해 보통명칭화 내지 관용표장화가 되면 상표권 침해 주장이 불가능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초코파이'다.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초코파이를 제조해 판매한 기업이다. 1976년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다.

초코파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후발주자들이 등장했다. 롯데제과는 1979년 초코파이 제품을 출시하고 1980년 '롯데 초코파이'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다. 크라운제과는 1989년부터 '크라운 초코파이'를, 해태는 '해태 초코파이'를 판매하는 등 '미투 상품'(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또는 경쟁 브랜드를 모방해 출시한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오리온은 1979년 초코파이 제품을 처음 출시하고 상표권을 획득했지만 이미 상품의 보통 명칭처럼 사용돼 식별력이 상실됐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상표권이 무효화됐다. 왼쪽부터 오리온 초코파이, 롯데 초코파이, 크라운 초코파이. /사진=각 사
오리온은 롯데가 '롯데 초코파이' 상표권을 재등록해야 하는 시점인 1990년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오리온 측은 "국민 10명 중 9명이 초코파이라면 오리온을 떠올린다"며 다른 업체가 초코파이 명칭을 쓰는 것은 상표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오리온이 패소했다.
재판부는 오리온뿐 아니라 누구나 초코파이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초코파이가 이미 상품의 보통명칭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돼 식별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2001년 '초코파이'는 '원형의 작은 빵과자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코렛을 바른 제품'을 의미, 해당 상품에 대해 보통명칭 내지 관용상표가 됐다고 봤다. 즉 소비자들이 '초코파이'를 브랜드가 아닌 제품 종류로 인식하고 있어 상표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코파이 사례처럼 '보통명칭화'로 상표권의 권리행사가 제한되거나 무효가 된 사례는 적지 않다. '불닭' '호빵' '컵라면' 등도 상표가 유명해진 후 상품에 대한 고유명사로 기능하게 되면서 상표권이 상실됐다. '불닭은 2001년 4월 개인이 등록한 상표였지만 상표권자가 관리나 권리행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불닭'이 유행을 타자 '닭고기를 이용한 음식' 중 한 종류로 인식돼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 법원도 '불닭'이 보통명칭처럼 사용돼 상표 식별력을 상실했다고 인정하면서 결국 상표권이 무효화됐다.

삼립식품이 1970년대 처음 출시한 '호빵'은 1990년대 초 상표권 등록을 시도했지만 이미 호빵이 보통명칭 또는 관용포장이 돼 별도의 상표권 행사를 못하고 있다. '컵라면'도 삼양식품이 처음 도입한 상표명이었지만 보통명사화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