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이 걸어 놓은 자물쇠가 남산을 꽉 채우면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N서울타워. /사진=뉴스1
"사랑을 맹세하고 자물쇠를 채웠어요."
연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왼손 약지에 커플링을 끼기도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자친구·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약속하는 '사랑의 자물쇠'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남산공원은 연인들 사이에서 데이트 명소로 꼽힌다. 사랑을 약속하고 변치 않는 마음을 적은 자물쇠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하지만 커플들이 걸어 놓은 자물쇠가 남산을 꽉 채우면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아 녹슬어 버린 자물쇠가 식물과 야생동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머니S가 사랑의 자물쇠가 채워진 남산공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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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변치 말자"… 자물쇠는 사랑의 징표━
사랑의 자물쇠를 걸 수 있는 남산공원은 연인들 사이에서 데이트 명소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남산. /사진=정원기 기자
남산 데이트가 로망이었다는 박모씨(남·20대)는 "어렸을 적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사랑의 자물쇠를 알게 됐다"며 "변하지 않는 마음을 약속하는 게 멋있는 것 같아 꼭 하고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년 뒤에 다시 방문하자고 적었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남자친구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자물쇠를 구매했다는 이모씨(여·20대)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평소 짜증을 많이 낸다"며 "말로 하기 쑥스러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알콩달콩한 메시지를 사진으로 남겨 앞으로 싸울 때마다 회상해 슬기롭게 극복하려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연인과 함께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자물쇠에 큰 흥미를 보였다. 이들은 한국의 관광명소로 불리는 곳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했다.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을 보고 한국여행을 왔다는 인도네시아인 A씨(여·20대)는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인 사이에서 SNS에 자물쇠를 거는 영상이 인기"라며 "추억을 남기기 위해 자물쇠를 구매할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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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명물 아닌 흉물"… 녹슨 자물쇠 어쩌나 ━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아 녹슬어 버린 사랑의 자물쇠. 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남산에 걸려있는 자물쇠와 휴대폰 케이스. /사진=정원기 기자
건강을 위해 남산을 즐겨 찾는 정모씨(남·60대)는 "냄새나는 흉물"이라며 "녹슬어버린 자물쇠 주변에 벌레가 꼬인 모습을 종종 본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녹물이 흘러 산림을 병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녹이 슨 자물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물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종이로 살짝 문지르니 녹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자녀와 함께 남산을 찾은 박모씨(여·30대)는 "멀리서 봤을 때는 예술 조형물처럼 아름다웠는데 가까이서 보니 조금 충격적"이라며 "당연히 야외에 노출된 만큼 녹이 슬 거라고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이라고 입을 뗐다. 이어 "아이가 손으로 만지거나 입에 댈까 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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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 걱정 마세요"… 생태계 영향 미미━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녹슨 자물쇠는 일종의 시각 공해로 토양오염과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자물쇠를 걸고 인증 사진을 찍는 연인. /사진=정원기 기자
전문가들은 남산공원 자물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결론부터 말하면 환경 오염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시민 입장에서 자물쇠 수천개가 묶여있고 녹이 슬어있으니 보기 안 좋을 수 있다"며 "이는 일종의 '시각 공해'이지 토양오염 등으로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납이나 구리 등 재질에 따라 중금속이 발생하는데 일반 자물쇠에서 중금속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남산공원의 경우 철제물과 데크가 있어 녹물이 토양으로 직접적으로 흐르지 않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다른 환경단체 관계자는 "중금속과 녹물은 다르다"며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정에서 수돗물을 먹는 경우를 생각해보자"며 "수도관이 낡아 관 자체가 녹슬었지만 인체에 영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우려하는 만큼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무에 자물쇠를 거는 것을 단속하고 불필요한 샛길 폐쇄 등을 조언했다.
서울시 방침은 어떨까. 서울시는 노후된 자물쇠를 대상으로 녹을 제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임은희 서울시 중부공원여가센터 주문관은 "오염 정도가 심해졌을 때 청소를 진행한다"며 "분기별로 1~2회 꾸준히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전 녹을 제거할 것"이라고 전했다.
녹 제거 방법에 대해선 "봉수대에서 팔각광장에 있는 자물쇠를 관리한다"며 "고압살수기를 이용해 청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후되고 철거가 불가피한 자물쇠가 있다면 일정기간 안내·공지 후 철거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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