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민 강북경찰서 경위(왼쪽)와 정회인 경장이 2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유민주 기자 = 고시원에 위장 전입하는 방식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저금리 전세대출을 받도록 알선해 준 일당들. 수년간 이런 방식으로 수십억의 불법 대출을 받아 이익을 챙겨 온 총책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혐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위장 전입한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하면 이미 총책, 고시원 사장 등 브로커들과 입을 맞춰 고시원에서 실제로 살았다고 주장하며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이한민 강북경찰서 경위가 2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세개 조직 차례로 검거…종교단체 돌고·사회복지사 자격 취득해 불법대출 영업
지난달 고시원에 위장전입 하는 방식으로 LH전세자금 불법 대출을 받아 105억5000만원을 챙긴 129명의 일당을 검거한 강북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소속 이한민 경위(52)와 정회인 경장(33)은 지난 2일 뉴스1을 만나 불법성은 확실했지만 혐의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총책과 브로커들은 2017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임대주택 입주 희망자들에게 접근해 작업비 명목으로 건당 100만∼500만원을 받고, 서울·경기·인천 소재 고시원에 허위 전입신고를 하도록 했다. 이렇게 LH 전세 임대 입주 자격을 얻은 위장 전입한 피의자들은 개인당 8000만∼1억3000만원 상당의 불법 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불법 대출을 받은 규모가 105억5000만원에 달했다.
이 경위가 처음 사건을 인지한 것은 우연히 걸려온 상담 전화에서였다. 한 남성이 도박에 빠진 애인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해당 여성이 이상한 브로커에게 돈 300만원을 주고 집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위는 "남성이 이런 행위가 불법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담하려고 전화가 왔다"며 "수상한 느낌이 왔고 바로 남성을 만난 후 여성까지 대면했다"고 설명했다.
이 경위는 여성을 통해 브로커의 존재를 확인하고 계좌 추적으로 100만~300만원씩 불특정 다수에게 빠져나간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돈을 입금한 이들이 공통으로 LH에서 전세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브로커 위에 총책 A씨(57)가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노점을 하던 A씨는 2017년 무렵 LH전세제도를 악용할 방법에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다니기 시작한다. A씨는 주로 종교단체를 돌아다니며 주거가 불안정한 이들에게 접근했다. 정 경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종교단체가 주 타깃이 됐다"며 "생각보다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소개로 더 많은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고시원 몇 곳과 공모해 1개월간 거주할 고시원비를 내고 3~4개월 동안 거주한 것처럼 영수증을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LH전세임대주택 입주 요건에 쪽방·고시원·여인숙 등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이력이 포함된다는 점을 악용해 허위 서류를 발급한 것이다.
이 경위와 정 경장은 A씨의 진술을 통해 인천 지역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불법 대출을 알선해 주고 있던 B씨(48)의 존재를 확인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B씨는 실제로 LH전세자금 대출받은 후 이 제도를 악용하기 쉽다는 점을 파악하고 본격 범행을 시작한다. 이 경위는 "B씨는 영업을 더 잘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며 "명함에 사회복지사가 적혀 있으면 신뢰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B씨를 통해 불법 대출을 받았다가 자신도 새로운 조직의 총책이 된 C씨(56)의 존재까지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경위는 "C씨가 B씨에게서 대출받으며 방법을 이미 파악했고, 똑같은 고시원에 가서 똑같은 조건으로 영수증을 발급하면서 범행했다"며 "어떻게 보면 B씨는 C씨에게 배신당한 셈"이라며 웃었다.
강북경찰
◇"실제 살았는데요?" 소환조사 시 이미 입을 맞추기도…예고 없이 현장찾아가 증언 받아
총책 세 명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위장전입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브로커나 총책이 위장 전입자와의 거래를 계좌 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한 경우도 많았고 지인들을 이용해 차명 계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허점은 있기 마련이었다. 정 경장은 "총책들은 처음에는 추적을 피하고자 철저하게 현금으로 거래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범행이 발각되지 않자, 안심한 나머지 계좌 이체로 수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다 걸렸다"고 설명했다.
위장전입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소환을 하면 이미 브로커나 고시원과 입을 맞춰 실제 고시원에 살았다고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가장 난감했다. 그래서 이 경위와 정 경장이 선택한 방법은 예고 없이 위장전입자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정 경장은 "무작정 위장전입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당황해 범행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두 수사관만의 힘으로 허위 서류를 발급받은 100여명을 일일이 조사하고, 연관된 수백 개의 계좌를 들여다보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었다. 정 경장은 "눈이 너무 아파 인공눈물이 필요하게 됐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온전히 이 일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상적인 고소·고발 건도 처리해야 했다. 지난해 말에 착수한 수사는 8월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경위와 정 경장은 아직 이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범행을 입증하지 못한 위장전입자들과 비슷한 수법을 쓰고 있는 일당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한민 강북경찰서 경위(오른쪽)와 정회인 경장이 2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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