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지난 11월 8일 올해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용 요금만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 인상한 배경에 정치적인 셈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 같은 강 차관의 발언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현장에서 만난 복수의 기업 관계자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심 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을 대기업에만 떠넘긴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할 기업들은 요금인상에 대한 부담 증가로 글로벌 경쟁에서 더욱 불리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전기요금 외에 가스요금도 동결했다. 이 역시 총선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동안 에너지요금은 정부의 의견에 따라 결정돼왔다. 전 정부에서 국제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에 따라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물가안정과 민생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인상을 주저하며 요금 현실화가 미뤄졌다. 이를 근거로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가 사실상 요금 인상 부담을 현 정부에 떠넘긴 것은 물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악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도 똑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 정부 역시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경기침체와 민생부담 등을 이유로 인상에 주저하고 있어서다. 앞서 산업부와 한전은 올해 기준연료비를 포함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h 당 51.6원으로 산정했고 가스공사는 가스요금 인상분을 MJ당 8.4원(분기당 2.1원) 올리거나 10.4원(분기당 2.6원) 인상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실제 인상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업계에선 총선 이후에나 전반적인 요금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요금 인상을 주저하는 사이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은 심화하고 있다. 한전은 2021년 2분기부터 시작된 영업손실로 인해 현재까지 누적된 적자가 47조원에 달한다. 총부채 규모도 204조원을 넘어선다. 가스공사의 경우 3분기 도시가스 민수용 미수금이 상반기 말보다 2767억원 증가한 12조5202억원 수준이다.
에너지요금 인상이 정치셈법을 벗어나려면 독립기구에 맡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처럼 노·사·정은 물론 시민사회가 다양하게 참여하는 독립기구를 설치해 상황에 맞게 인상과 인하를 결정해야 한다.
실제 미국은 주별로 공익사업위원회(PUC), 영국은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일본은 전기·가스시장감독위원회(EGC) 등을 통해 독립적으로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하고 있다.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에너지요금의 탈정치화를 이루길 바란다.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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