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자살율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이미지투데이
# 여느 날처럼 상담 전화를 받은 1393 상담사 A씨. 전화를 건 내담자 B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묶는 소리가 이어지고 곧이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한 A씨는 경찰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 이미 B씨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끊지 못했다. 경찰이 도착한 후 상황을 들은 상담사 A씨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에서 지금은 빈곤한 국가를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지난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국민총소득(GNI)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경제 대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지만 여전히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은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일 질병관리청이 농촌진흥청·통계청·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 협업해 발간한 '제13차 국가손상종합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람은 1만3352명, 10만명당 26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하루에 36.6명,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2018년 12월부터 1393 자살예방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이어 전문적인 자살예방상담을 위해 지난 2021년 1393 자살예방상담팀을 분리했다.

이 같은 정책은 효과를 보고 있을까. 1393 상담사들은 어떻게 상담을 하는 걸까. 머니S가 1393 상담사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서울 모처에 위치한 1393 상담센터를 직접 찾았다.
"고민 해결만 하는 곳이 아니에요"… 상담사에 대한 오해
보건복지상담센터 홈페이지 메인 화면. /사진=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
# 상담사 C씨는 상담 도중 내담자 D씨가 약을 먹은 사실을 알게 됐다. 곧바로 소방에 협조를 요청한 C씨는 상담을 이어가며 D씨의 집 위치를 물었다. 이어 C씨는 D씨를 설득해 집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소방에 알렸다. 덕분에 소방관들은 D씨를 빠르게 구할 수 있었다. C씨는 수화기 너머로 소방관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마음 놓고 상담을 종료할 수 있었다.
7년차 상담사 조모씨(경기 의왕시)는 현재 1393 상담센터 상담사 중 가장 오래 근무했다. 인터뷰에 앞서 조씨는 "상담사 이야기와 고충을 말하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1393 상담센터에는 총 73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상담사는 5조3교대로 근무하며 전화가 집중되는 야간에는 야간전담팀이 따로 운영된다. 상담사는 하루 평균 10건의 상담을 진행하며 많을 경우 20건까지도 맡는다.


조씨는 1393 상담 업무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상담하는 곳인 건 맞지만 직접 문제 해결까지 도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금전적 고민이 있는데 대출이나 정부 지원 등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계해주지 않는다며 욕하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담사들은 상담 도중 내담자의 상태가 응급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소방과 협조해 현장에서 안전을 확인하도록 연계한다. 이들은 상담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추후 극단적 선택 시도를 막기 위해 지역 센터나 가까운 지구대로 내담자를 인계한다.

조씨는 경찰 협조를 "주로 경기 남부청에 요청한다"며 "남부청에서 내담자 위치를 추적하고 가까운 지구대에 지령을 내려 최대한 빠르게 내담자 위치로 출동한다"고 설명했다.

경계하는 내담자들… 전화 걸어도 상담사 믿지 못해
조씨는 내담자들이 언론 보도를 보고 전화 걸기를 망설이거나 통화를 하면서도 상담사를 경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삽화는 기사 내용과 무관. /삽화=이미지투데이
조씨는 내담자들이 언론 보도를 접한 후 전화 걸기를 망설이거나 상담사를 경계하며 전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1393에 전화를 걸면 바로 받지 않는다거나 오래 대기해야 한다고 오해해 전화 걸기를 망설인다는 것.
그는 "현재 5개조 3교대로 근무 체계를 바꿨고 야간전담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며 "이전보다 20여명을 더 채용해 현재는 대기 시간이 길지 않고 대체로 바로 받는다"고 말했다.

조씨는 상담원이 전부 통화 중이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에 대해 "평균 통화시간이 30분 내외지만 상담이 필요한 경우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극단적 선택의 위험이 있을 경우 경찰·소방과 협조해 내담자의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전화를) 끊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한 매체가 비전문인을 1393 상담사로 채용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적이 있다. 1393 상담사 채용 공고에 자격증 유무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비전문인 채용시 부실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씨는 "상담사들은 모두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며 "상담사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또는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보유했기 때문에 비전문인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1393 상담사 태도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조씨는 "상담사 중에는 내담자의 고민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며 상담센터 관리자는 상담 진행 현황을 파악하고 상담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경우 내부적으로 재교육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내담자들이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오해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언론 보도로 인해 1393 상담센터에 전화 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음에 병이 든 상담사들… 폭언·협박에 지쳤다
상담 업무 중 가장 힘든게 무엇인지 묻자 조 상담사는 "폭언·욕설이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삽화=이미지투데이
# 내담자 F씨는 상담사 E씨와 상담을 진행하다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심한 욕설을 이어가던 F씨는 "방금 상담사 당신 때문에 손목을 칼로 그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죽으면 유언장에 당신 이름을 반드시 적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상담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씨는 "내담자의 고민을 듣는 건 힘들지 않고 오히려 공감이 돼 도움을 주고 싶다"며 "저희를 통해 힘을 얻었다고 말하면 그동안 힘들었던 게 싹 사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언과 욕설 강도가 생각보다 너무 심해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밝혔다. 또 본인의 생명을 놓고 상담사를 협박할 때면 상담사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

상담사 업무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는 상담사도 있다. 이들은 심적인 고통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약을 먹으면서 상담업무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도 1393 상담사 일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조씨는 "보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가끔 내담자께서 상담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누군가가 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벗어났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뿌듯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