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2월25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대한민국 제9차 개정헌법이 시행됐다. 사진은 지난 1987년 헌법개정 기초소위원회 위원들이 제9차개정헌법 초안을 마련한 뒤 기념서명을 하는 모습. / 사진=국회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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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헌철폐, 독재 타도"… 민주화 외쳤던 그해 ━
지난 1987년 6월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주시민대동제 6.10 민주난장' 참여자들의 모습. / 사진=뉴시스
1987년 1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은 직선제로 개헌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본인은 아무런 정치적 사심이 없습니다." 당시 전두환이 발표한 담화다. 그는 담화에서 호헌조치를 선언했다. 호헌은 '현재의 헌법을 보호해 지키겠다', 즉 개헌 논의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면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대통령 간선제로 후임 대통령을 뽑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에 전두환의 장기 집권을 우려하는 전 국민의 개헌 요구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여기에 더해 1987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에 관한 경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자 경찰은 이렇게 발표했다. 박종철 군은 조사실에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끝내 사망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이 사건은 6월항쟁의 중요한 계기가 돼 민주화운동의 촉매제가 됐다.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크게 분노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987년 6월9일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민주화 시위를 하던 연세대 학생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고 시위에 참여한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았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그는 한 달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한 미국 기자에 의해 포착돼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고 시위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후 시민단체, 대학생뿐 아니라 넥타이 부대로 불린 회사원들, 택시 운전사, 여고생 등 일반 시민이 모여 항쟁을 이어갔다. 경찰은 국민의 행진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는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할 것을 건의해 승낙을 받아냈다. 제6공화국 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 마침내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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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념 뿌리내리다… '임시정부 계승' 정신도 포함━
지난 1988년 2월25일 대한민국에 제9차 개정 헌법이 시행됐다. 사진은 개헌 후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하는 모습. / 사진=뉴스1 (대통령기록관)
기본권 측면에서는 자유를 다시 폭넓게 보장하도록 바뀌었다. 적법절차 조항과 체포·구속 시 고지, 가족에 통지를 명문화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자유를 보장했다. 또 사회적 약자 권익 보호를 명시하고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시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
또 헌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제헌헌법의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시작된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연원이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5·16쿠데타 뒤인 1962년 공포된 헌법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로 바뀌었다. 3.1운동은 남았지만 '임시정부 계승'은 빠졌다.
9차 개정헌법에서는 '임시정부 계승'의 내용이 다시 들어갔다. 이 헌법의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하고'라고 명시됐다. 단순히 임시정부를 언급한 것만을 넘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9차 개정헌법은 1987년 10월 공포됐다. 역대 헌법은 공포 즉시 발효를 규정했다. 그러나 개정헌법 부칙 제1호에서 이 헌법은 1988년 2월25일부터 시행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이날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5년에 한 번씩 대한민국에서는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이날 열렸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도 앞당겨져 차기 대통령인 제19대 대통령부터 5월10일로 취임식이 변경됐다.
9차 개정헌법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또 각계각층의 민주 시민운동이 발전하는 기점이 됐다. 이로써 현재도 적용되는 최장수 헌법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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