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3일 수요일 저녁.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구제 금융을 받았다. IMF 사태는 동남아시아에 발생한 연쇄 '외환위기'에 더해 정부의 외환관리정책 실패가 원인이다. 이후 IMF 요구에 따라 대대적인 국가 경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회사들의 부도, 대량 해고 등에 따른 급속한 내수 위축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기업이 해외 기업에 헐값 매각되는 등 국부 유출도 심각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이 지속되고 우리나라는 끝났다는 암울함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보름 뒤에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IMF 사태는 1998년 12월 첫 자금 상환을 계기로 막을 내렸다. 구제 금융을 받은 지 2년 만에 모든 국민이 합심해 고성장, 저물가, 경상수지 흑자를 모두 이뤄낸 결과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IMF 사태 종식을 공식 발표했고 2001년 8월 IMF 관리 체제는 종료됐다. 국민 350여만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IMF 사태는 무사안일주의를 타파되는 계기가 됐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늦은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민주화 이래 45년 만에 첫 비상계엄 사태다. 윤 대통령은 헌법주의자로서 자유민주주의 파괴 세력에 맞서기 위해 결단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퇴진 요구, 주요 공직자 탄핵 소추안 수십 건 발의, 법률·예산안 통과 방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비록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되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440원을 넘겼고, 며칠 동안 시가총액은 100조원 이상 사라졌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고,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자포자기다.


준전시 상황에 국민을 지키는 비상 수단인 계엄은 쉽게 선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에 계엄 발동을 엄격히 규정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계엄법은 언론·출판·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하고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다. 계엄 선포 당시만 해도 "내가 모르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야당 견제를 위한 위법한 행동으로 귀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우리나라 경제에 계엄 사태가 더 해져 어둠이 더 짙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서 무더기 발령으로 미국 중심 보호무역 및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세계 교역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전자, 철강 등의 업황도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환율에 소비자물가 상승이 겹쳐 수출과 내수 모두 침체할 수 있다.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상계엄 여파로 국정 운영 동력이 휘청거리면서 반도체, 인공지능 경쟁력 강화, 의료·연금·교육·노동 등 4대 개혁 추진은 요원해졌다.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해 추진했던 세법 개정안도 부결된 것이 많다.

IMF 사태에 가졌던 절망감은 지금과 비교해도 적지 않았다. 처음 겪는 나락이었기에 체감은 더했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위기에 강한 국민들이 있었기에 결국 이겨냈다.

우리가 어떤 국민인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식민지 시대를 겪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렸다. 61년 전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의 날'을 제정했는데 올해 수출은 사상 최대인 6850억 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K팝·드라마에 이어 푸드·방산도 세계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5000년 역사상 한반도에서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부흥한 선진국이다.

광복 80년이 되는 을사년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 얘기가 회자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일관된 그들의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시련이 있으면 하늘의 선택지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