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현대차 울산공장 불법 점거와 관련해 법원이 사실상 면죄부 판결을 내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한 생산라인. 사진 속 인물과 생산라인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현대차
재계는 법원이 최근 공장 불법점거로 생산라인이 멈췄더라도 노조 측이 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연이어 내리자 노조의 변칙적 불법 행위가 발생해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허탈한 반응이다.
1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 민사2-2부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에 대해 노조의 불법적인 생산시설 점거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청구한 소송 4건의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측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
법원 "불법 쟁의행위 시간 짧아 손해 만회 가능"━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2012년 8월부터 12월까지 총 18차례에 걸쳐 약 994분 동안 울산공장 의장라인 등을 불법으로 멈춰 세우면서 현대차는 생산 라인 정지 및 피해 복구비용, 인건비, 보험료 등 손실을 떠안았다.현대차가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민소소송을 냈지만 부산고법은 노조의 공장 불법점거로 인한 손실 만회를 위해 추가 생산이 없었음에도 '피해가 회복됐다'는 노조 측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여 4건의 파기환송심에서 모두 회사 측 손해에 대한 노조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부산고법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2012년 12월 울산공장 1공장과 2공장 3개 의장라인을 도합 약 111분 동안 점거한 사건에 있어 조업 중단 기간이 단기간이었다고 봤다. 그 정도의 생산 감소분은 추후 짧은 시간 내 충분히 만회될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2012년 11월과 12월 울산공장 1공장과 3공장에서 6개 의장라인을 약 408분 동안 점거한 사건과 2012년 12월 울산공장 1~3공장의 4개 의장라인을 317분 동안 점거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동일하게 단기간의 조업 중단이라고 판단, 회사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앞서 지난 6일에도 부산고법 민사6부는 2012년 8월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의장라인 등을 불법점거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및 지회 노조원에게도 배상 책임을 면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판결 결과를 악용한 노조의 변칙적 불법행위가 만연해지는 등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망연자실해 한다. 앞으로 생산시설에 대한 단기간 불법점거를 합리화하는 법리로 악용돼 노조의 변칙적인 불법 쟁의행위가 조장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조가 단기간 불법 쟁의행위를 반복해 생산 차질이 빚어지더라도 이에 대해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게 될 수 있는 판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3일 입장문을 내고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는 조직적으로 회사 공장을 점령해 폭력을 행사하고 기물을 손괴해 막대한 생산 차질을 일으킨 사건"이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행위 가담자들의 책임을 면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도 산업현장은 노조의 폭력과 파괴, 사업장 점거 등 불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법원은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촉구했다.
법원이 현대차 울산공장 불법 점거와 관련해 사실상 면죄부 판결을 내리자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 전경. /사진=현대차
━
"같은 사안에 대해 법원 스스로 형사·민사상 판결 불일치 논란 자초"━
과거 불법점거 조합원에는 형사상 유죄 판결이 나왔음에도 이번 재판에서 비정규직지회의 민사상 책임이 사실상 면제된 데 대해 법적불일치 논란도 불거졌다.하청지회의 공장 불법점거에 참여한 복수의 조합원들은 이미 10년 전 해당 불법점거를 포함해 수 차례의 공장 불법점거 행위를 벌여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014년 10월 울산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주동자인 박모 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주요 가담자인 강모 씨 등 4명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나머지 조합원들은 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또는 100만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인 2015년 7월 부산고법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민사재판에서도 울산지법 1심과 부산고법 2심은 현대차의 손실 발생을 인정해 박모 씨 등에게 불법 점거행위를 지시한 하청지회에 사건별로 5000만원에서 2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반면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부산고법 재판부가 회사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면서 형사 및 민사상 판단이 서로 상충되는 법적불일치 상황을 법원이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청지회의 지시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지른 소속 조합원들에게 형사적으로 이미 유죄가 확정된 사안임에도 정작 조합원들에 지시를 내린 하청지회에는 피해 배상 책임이 없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
이 같은 노조 편향 판결이 반복되면 노동자의 불법 쟁의행위가 더욱 빈번해져 불확실성이 커진 대내외 경영환경 속 치열하게 경쟁 중인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대내외 기업 경영 환경 속 법원의 친노조 판결 리스크까지 커지며 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지속되면 생산시설 점거와 같은 불법 행위에도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불법 쟁의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더욱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노사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노동 환경이 마련되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