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의 IPO 추진이 당분간 어려워진 가운데 정의선 회장이 최대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로 남은 승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그래픽=김은옥 기자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붕괴사고로 현대엔지니어링의 IPO 추진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자금 확보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 회장이 최대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로 남은 상속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순환출자는 3개 이상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금을 늘리는 지배구조 방식이다. 순환출자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여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지배구조도 투명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현대차그룹의 출자구조는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크게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 회장이 순환 출자 고리를 끊고 그룹 내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비중을 늘려야 한다.


현재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2%로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7.24%에 한참 못 미친다. 정 명예회장의 모비스 지분을 전부 상속받는다고 해도 7%대에 그친다. 핵심 그룹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지분도 각각 2.67%, 1.77%다. 정 회장이 향후 그룹을 장악하고 안정적으로 경영을 펼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의 추가적인 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승계 과정에서 최소 3조원대 이상의 상속·증여세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위해 정 회장 지분이 높은 기업들의 상장, 주가 상승, 배당 등으로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정 회장이 취임한 2020년 이후 현대차 계열사들의 배당금은 크게 늘었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들의 실적 증가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한 정 회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기아,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들이 밸류업에 적극 동참하면서 정 회장이 받게 될 배당금도 증가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 회장이 올해 주요 계열사로부터 받을 배당금(2024년 기준)은 18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배당금(1611억원)보다 10% 이상 증가한 규모다. 늘어난 배당금은 정 회장의 승계 자금 마련에 일정 부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최근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현재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이 개인 최대 주주로 있는 만큼 주요 자금 확보처로 여겨져 왔다. 지난 해에는 물류와 해운, 유통 등 전 사업부에서 성장세를 보이면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작년 매출은 28조4074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2.8% 늘어난 1조7529억원으로 집계됐다.
호실적에 힘입어 올해 배당도 확대했다. 지난해 대비 17.5% 증가한 주당 3700원으로 배당금 총액은 2775억원이다. 20% 지분을 보유한 정 회장은 배당으로만 554억원을 수령할 전망이다.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에 현대글로비스 주가도 꾸준히 우상향하면서 정 회장의 지분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정 회장의 승계를 도울 계열사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는 지난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미국의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다. 이때 정 회장도 자비 2500억원을 들여 지분의 20%를 취득했다. 이후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21.27%까지 늘렸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올해 상반기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분을 인수할 당시 체결한 풋옵션 계약에 따라서다. 일각에서는 상장 이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가 현재보다 10배 이상 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활용되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2조원대로 늘어나 상속 재원 마련이 수월해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