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감시·견제 역할보다는 높은 보수만 챙기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해 오히려 경영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은 통신 3사의 2024년 사외이사 활동 내역. /그래픽=김은옥 기자
통신 3사의 이사회가 형식적인 운영에 머물며 사외이사들의 실질적인 견제 기능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지난해 이사회에서 상정된 모든 안건을 한건의 부결 없이 처리했다.
SK텔레콤의 경우 총 88개의 안건 중 보고 안건을 제외한 58개 안건에서 사외이사 6인의 찬성률이 100%를 기록했다.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로 45개 안건 중 보고 안건을 제외한 24개 안건에서 사외이사 4인이 모두 찬성했다.
소유분산기업인 KT는 상대적으로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편이다. KT는 지난해 총 15차례 이사회를 열고 66개 안건을 논의했다. 보고 안건 11개를 제외한 55개 안건 중 50개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의결 안건 55개 : 원안가결 50건, 의결보류 2건, 조건부가결 1건, 수정가결 2건)
다만 이마저도 실질적인 견제 기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의결 보류된 2건의 안건 중 '장기 성과급 처리·자기주식 처분'은 결국 몇 달 후 열린 12차 이사회에 재상정돼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KT-KT클라우드 내부거래 추진' 안건은 출석 이사 10명이 모두 반대했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이사회에서 233억원 규모의 자산 양도 거래가 의결됐다. 표면적으로 보류·반대된 안건도 결국 시간을 두고 다시 통과되는 경우가 많아 사외이사의 실질적 견제 역할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한국의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도입됐다. 당시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은 한국의 비효율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경제위기를 심화시킨 주요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27년이 지난 현재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감시·견제 역할보다는 높은 보수만 챙기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해 오히려 경영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사 보수 한도와 이사회 구성까지 사외이사들이 직접 찬성해 통과시키면서 그 결정의 정당성과 신뢰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2025년 경영 계획과 중장기 투자 등 주요 사안도 별다른 이견 없이 그대로 의결되면서 사외이사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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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3사, 사외이사 평균 급여는 1억1692만원━
상장사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과 경영 활동에 대한 전문성이 필수 요건으로 꼽히지만 억대에 달하는 급여를 받을 경우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경영 쇄신이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휴대전화 매장 앞. /사진=뉴스1
독립적인 위치에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이나 전횡을 막는 데 나서야 할 사외이사가 상당한 연봉을 지급받는 '고용된 직원'이나 다름없는데 견제와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냐는 우려다.
'찬성표'만 던져온 통신 3사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 역시 '1억원'을 넘었다. SK텔레콤의 경우 사외이사 6인의 평균 연봉이 1억5677만원으로 1억원을 훌쩍 넘었으며 KT와 LG유플러스도 각각 9800만원(8인), 9600만원(4인)으로 1억원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 일관된 찬성 표결로 '거수기' 역할만 하면서도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통신 3사의 사외이사가 본연의 감시·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의 거수기 논란이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통신 3사는 올해 대부분의 사외이사를 유임할 예정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달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전원을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SK텔레콤만이 쇄신을 시도했다. 기존 사외이사 대신 법조계 출신인 김창보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전 서울고등법원장)를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통상 사외이사 재선임 평가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수행하는데 이사회 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부족해 대부분 연임이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외이사가 임기를 다 채우거나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하는 경우에만 교체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이사회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였으나 여전히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오히려 거수기 역할에 머물며 높은 보수만 챙기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형식적인 운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며 "경영진과의 유착을 방지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로 기능하려면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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