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사이에서 중고의류 쇼핑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빈티지숍에서 손님들이 옷을 고르는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2013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지드래곤과 정형돈이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을 찾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두 사람이 바닥에 쌓인 중고 옷 무더기에서 '득템'에 성공하는 장면은 방영 직후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중고 의류 쇼핑은 '아는 사람만 아는' 취향의 영역이었다. 최근에도 이들은 예능에서 중고의류 쇼핑에 '홀딱' 빠진, 10여년 전의 추억을 소환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중고 의류 쇼핑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특히 MZ세대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왜 중고 옷을 찾을까. 기자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망원동 일대의 세컨핸드숍과 빈티지숍에 직접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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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의류 문화, 일본에서 시작됐다━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 세컨핸드숍 단스토어를 찾았다. 사진은 조두희 단스토어 대표가 매장에서 판매 중인 일본 브랜드 코모리 셔츠 가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단스토어는 일본 브랜드를 취급한다. 니들스, 빔즈, 코모리 등 일본에서 공수해 온 브랜드 의류가 매장에 가득했다. 벽면에 걸려 있는 요시다포터, 휴먼메이드 가방도 눈에 띄었다. 상품 모두 거의 새 것처럼 깨끗했다. 브랜드 택이 그대로 달려 있는 상품도 있었다. 새 옷도 파는 거냐고 묻자 조두희 단스토어 대표는 "택이 있어도 어쨌든 일본 유통 과정에서 중고로 나온 상품들이다"며 "새 상품인지 중고인지 헷갈려하는 손님이 실제로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은 물가가 높고 브랜드 중심 소비 성향이 강해 중고 의류 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 사진은 2024년 1월4일 빈티지숍 성지로 유명한 도쿄 무사시노시 기치조지 거리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이러한 중고숍 문화는 증가한 일본 여행 수요와 맞물려 한국에 유입됐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3687만148명이다. 이중 한국인이 881만7765명(24%)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26.7% 늘어난 수치다.
조 대표는 "일본 편집숍 문화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세컨핸드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며 "특히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늘면서 젊은 손님들의 브랜드나 세컨핸드에 대한 이해도가 예전보다 확실히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이어 "최근 세컨핸드숍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함께 공존하며 연남동이 '세컨핸드의 성지'로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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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헌옷이 아니에요"··· 빈티지옷에 담긴 멋━
서울 마포구 연남동 세컨핸드숍 섬스토어는 포터, 노스페이스 퍼플라벨, 빔스 등의 일본 브랜드를 취급한다. 사진은 섬스토어에 진열된 가방의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매장 직원 김수영씨(26)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다 세컨핸드 제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세컨핸드나 빈티지 옷을 단순한 '헌옷'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같은 옷이라도 누가 입고 어떻게 활동했느냐에 따라 색 빠짐이나 주름이 달라지는데 그런 흔적이 빈티지의 매력이다"며 "새옷만 입는 것보다 자기만의 멋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섬스토어는 상품마다 발매가와 현재 판매가를 함께 표기한다. 김씨는 "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질 좋은 세컨핸드 제품이 오히려 합리적인 경우도 있다"며 "손님들이 가격을 비교해보고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자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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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 있는 물건이 좋아요"··· 망원동은 빈티지숍 열풍━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일대가 빈티지숍 투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망원동 빈티지숍 ‘빈티지킴킴’에서 판매 중인 명품 브랜드 가방의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망원동 거리를 걷던 중 '오늘이 지나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빈티지. 기회는 지금 뿐'이라고 적힌 포스터를 발견했다. 포스터 옆 안내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빈티지킴킴' 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에는 세월의 흔적이 깃든 의류와 가방이 가득했다. 김세희 빈티지킴킴 사장이 "이 옷은 90년대 스타일"이라며 손님에게 옷을 추천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빈티지킴킴은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들여온 제품을 취급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아이템들이 주를 이뤘다. 디올, 발렌티노,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제품도 곳곳에 보였다. 이중에는 60만원대의 가방도 있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빈티지숍을 자주 찾는다는 정선화씨(36)는 "예전에 유행했거나 예쁘지만 이제 단종된 물건을 건질 수 있다는 게 빈티지숍의 가장 큰 매력이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빈티지숍 유행을 체감한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망원동이 소품숍 투어로 유명했는데 요즘엔 지도에 빈티지숍을 찍고 찾아온다"며 "손에 다른 가게 봉투를 가득 들고 작정하고 구매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MZ세대가 빈티지 제품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김 사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주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 후반이라고 했다. 남자친구와 매장을 둘러보던 한수정씨(27)는 "요즘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시대인데 그런 점에서 빈티지가 딱 맞는 소비 방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망원동 일대에 새로 문을 연 빈티지숍도 늘었다. 5개월 전 문을 연 '논논' 역시 그중 하나다. 매장은 편집숍처럼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정다현 논논 사장은 그사이 근방에 빈티지숍 3~4개가 더 생겼다고 귀띔했다.
정 사장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쫓기보단 본인의 개성을 찾아서 옷을 구매하는 방식이 굳어진 것 같다"며 "환경 문제를 이유로 새 옷 대신 빈티지를 선택하는 손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매장을 둘러보던 손님 박준하씨(27)는 "요즘 기성품은 가격이 꽤 높은데 빈티지숍에서는 퀄리티 좋은 상품을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오늘도 녹사평쪽에서부터 빈티지숍 투어를 하고 오는 길이다"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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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의류 소비 현상 지속될 것"━
국내외 중고 의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빈티지숍에서 손님이 옷을 고르는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미국 중고 의류 플랫폼 스레드업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중고 의류 시장 규모는 2270억달러다. 연평균 성장률 10%를 기록하며 2029년 36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시대에 젊은 소비자들이 돈이 부족한 것도 빈티지 소비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제품을 찾으려는 심리와 원하는 물건을 발굴하는 과정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는 경향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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