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업계 노사가 올해 임단협에서 역대급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2022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진행됐던 노조의 임단협 투표 당시 투표 용지. /사진=현대차 노조(뉴시스)
국내 완성차업계가 여름 노동조합 투쟁 긴장감에 휩싸였다. 각 사 노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 여파와 6월3일 조기 대통령선거에 따른 새 정부 출범 등 뒤숭숭한 국내외 분위기와 맞물려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셈법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 현대차·기아, 노조 요구는?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임단협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발표했던 현지 31조원 투자 계획이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 회장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210억달러(약 31조원)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글로벌 3위 완성차업체를 넘어 1위 도약을 노리는 정 회장이 미국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을 장기적으로 진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되지만 노조의 시각은 '공평'을 기대한다. 회사가 미국과 맞먹는 수준의 국내 투자도 진행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투자를 통해 현지 완성차 생산을 늘리면 국내는 생산 감소로 이어져 고용 불안이 발생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번 임단협에 나설 현대차·기아 노조는 국내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고용 안정 확보를 요구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국내에서 사상 최대인 24조3000억원 투자에 나섰지만 노조는 국내 배터리 공장 건설 등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하는 있다.

현대차·기아 노사가 올해 임단협에서 국내 투자 관련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이 확대되면 지난해까지 각각 이어진 6년 연속 무분규(현대차)와 4년 연속 무분규(기아) 타결이 깨질 가능성도 높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각각 175조2312억원·107조4488억원의 매출을 거둬 사상 최대 성적을 기록했는데 노조는 이를 근거로 국내 투자 및 보상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업계가 올해 임단협에서 역대급 노사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마이 나온다. 사진은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 전경. /사진=뉴스1
GM·르노 분위기 뒤숭숭… 변수 있는 KGM
한국 철수설에 시달렸던 GM(제너럴모터스) 한국사업장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여파에 따른 실적 하락이 우려돼 인천 부평공장 철수설이 대두됐다.

GM 한국사업장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 수출 의존도가 커 당분간 한국시장 철수설은 꼬리표처럼 따라 붙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GM 한국사업장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49만9559대를 판매했고 80%가 넘는 약 42만대를 미국 시장으로 수출해 미국 시장 의존도가 상당하다.

GM 한국사업장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한국시장 철수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장기적인 국내 투자 전략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GM 한국사업장 노조는 최근 미국 GM 본사를 방문해 국내 신규 생산 모델 배정과 설비 투자를 요청해 이 같은 예측에 힘을 실었다.

GM 한국사업장은 2023년 1조3495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도 경기 불황 속 9618억원의 매출로 실적 선방에 성공했다. 이에 노조는 안정적 노동 환경 구축을 위한 성과급 확대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몇 년 동안 히트작이 없던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중형 SUV 그랑 콜레오스를 앞세워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올해도 흥행 열기가 이어지고 있어 노조는 임단협에서 이에 따른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 등을 요구할 전망이다.

르노코리아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 과정에서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나섰고 회사는 직장 폐쇄로 맞대응한 바 있어 올해도 순탄치 않은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기록한 KG 모빌리티(KGM)는 원만한 노사 합의가 기대된다.

히트작 토레스 판매 효과가 한창 때에 비해 떨어졌지만 전기차 '무쏘 EV'와 '토레스 하이브리드' 등 신모델 판매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 속에 안정적 경영 환경 유지에 대한 노사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관측이다.

변수는 있다. 지난해 기본급 7만2000원 인상과 PI(생산 장려금) 250만원 및 PS(이익 분배금) 100만원의 조건으로 교섭이 타결됐지만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에서 예년보다 현저히 낮은 56.2%의 찬성률을 보여 올해는 노사 줄다리가가 심화할 여지가 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는 5월에 시작된 업계 임단협 협상이 10월에야 최종 마무리될 만큼 긴장감이 상당했다"며 "각 사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올해도 역대급으로 국내외 시장 상황에 변수가 많아 노사의 팽팽한 기싸움에 생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