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사업을 할 때는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약서 작성과 검토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진은 인도 대법원 앞에서 한 변호사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모습. /사진=로이터
인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법적 리스크'다. 조항 수만 400개가 넘는 인도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긴 헌법으로 유명하다. 인도는 대륙법·영미법·형평법·관습법·종교법 등 합쳐진 '법조문의 나라'로 불린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계약 진행 시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인도에서 소송이 시작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되고 형사소송은 평균 3~5년 소요된다. 이 동안 정신적, 금전적, 시간적 손해가 불가피하다.


분쟁 소지가 가장 큰 것은 계약이다. 계약서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기준이 되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신중히 검토해 작성해야 한다. 계약서의 한 줄 한 줄이 곧 판결의 근거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계약서가 명확하면 법정에 가지 않아도 협상으로 끝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점이다.

계약서는 당사자, 목적, 정의, 기간, 이행 조건, 수정, 해지·종료, 배상, 중재·분쟁해결수단, 준거법, 불가항력에 따른 면책 등 모든 계약서에 들어가는 표준 조항 및 필수 조항이 적절하게 명시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손해배상 관련 조항은 배상액의 범위와 액수를 명확히 해야 하고 추후 소송에 따른 추가비용까지도 배상액의 범위에 넣을 수도 있다.

비밀유지와 라이선스 위반 관련 조항도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은 통상 기술을 이전하거나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합작법인을 설립해 현지 시장에 진출하는데 인도 측이 무단으로 제3자에게 해당 기술을 이전하거나 관련 제품을 자사 브랜드로 생산할 우려가 있다.


비밀유지 및 라이선스 위반이 발생하면 한국기업은 법원에 가처분(injunction) 신청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비밀유지계약 ▲경쟁방지(non-compete) 조항 ▲침해 시 가처분 조치 관련 조항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계약서는 영문으로 작성되는데 수동태보다는 능동태로 작성하는 게 좋다. 불필요한 단어나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호한 단어는 삭제해야 한다. 해야하는 의무를 의미하는 'shall'과 '할 수 있다'는 권리를 의미하는 'may'를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도 현지어 번역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영어와 힌디어를 병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경우에도 어떠한 언어가 우선하는지를 명시해 놓아야 한다.

계약 해지 과정에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출구전략도 세워둬야 한다. 합작투자 계약의 경우 파트너 기업과의 지분 배분, 매각, 지분 이전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분쟁을 피할 수 있다.

본계약 체결에 앞서 양해각서를 맺는 것도 분쟁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다. 통상 양측 합의 후에 관련 내용을 메모나 각서 형식으로 기재해 교환하는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형태가 일반적이다.

MOU는 당사자가 정식 계약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면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또는 계약 해제 등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MOU는 영미계약법상으로 청약(offer) 및 승낙(acceptance)과 함께 필요한 계약의 필수요건인 계약의 대가(consideration)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MOU라도 당사자간의 권리, 의무나 작위, 부작위의 약속을 하고 있다면 계약으로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소송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심-고등법원-대법원 단계로 진행된다. 소송 금액에 따라서 1심 법원이 지방법원(District Court)이 아닌 고등법원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주의할 점은 최소 1년에서 최대 12년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계약불이행 책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불이행이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부동산 점유회복 소송은 소멸시효 기간이 12년이다.

소송 당사자는 본안 소송 제기 전후로 잠정구제조치(interim relief)를 신청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가처분, 금지명령, 자산압류, 공탁 등의 형태가 대표적이다. 가처분 명령은 부동산 및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에서 주로 활용된다. 조사를 위한 목적으로도 가처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신청이 접수되면 재판부는 심리를 통해 잠정구제 신청을 검토해 명령을 선고한다. 명령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항소할 수 있다.

소송이 아닌 중개, 조정, 중재 등 대체 수단을 통한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 한국과 인도 모두 외국 중재판정 인정 및 집행에 관한 뉴욕협약(New York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l Awards, 1958) 체약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중재판정에 따라 인도에서도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

법무법인 지평 오규창 외국변호사(미국)는 "인도는 뉴욕협약 가입국이고 해당 조약에 따라 인도중재법(Arbitration and Conciliation Act of India, 1996)도 제정돼 있다"며 "계약 당사자간에 분쟁해결을 중재로 한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으면 분쟁에 대해 인도법원의 개입 없이 국제중재로 해결할 수 있고 해당 판결을 인도에서 집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소송과 마찬가지로 집행을 위해서는 인도 법원의 집행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따라서 담보설정 및 은행보증(Bank Guarantee) 등 분쟁절차를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회수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