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핵심 입지를 포함한 주요 재건축 현장에서 경쟁입찰이 무산되고 수의계약 방식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롯데월드타워 스카이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남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건설 원가 급등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건설업계가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공사의 무리한 수주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의 핵심 입지를 포함한 주요 재건축도 경쟁입찰이 무산돼 수의계약으로 전환된 사례가 잇따랐다. 시공사의 입장에서 보면 출혈 경쟁을 피해 비용 절감이 가능한 반면 사업 시행자인 조합들은 공사비·분담금 상승에 따른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 입찰에서 GS건설이 단독 참여하며 경쟁 입찰이 무산됐다. 지난 3월 1차 입찰에 이어 이번에도 GS건설이 단독 입찰한 것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정비사업 시공사 입찰에 1개 업체가 참여하면 유찰된다. 동일 조건의 입찰 과정을 두 차례 진행한 후에 단독 입찰시 조합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잠실 우성 1·2·3차 아파트는 1981년 준공된 1842가구 아파트다. 12만354㎡ 부지에 지하 4층~지상 49층 2860가구로 재건축이 추진되며 약 1조7000억원의 공사비가 예상된다. 강남권의 다른 핵심 사업지인 개포주공 6·7단지도 현대건설이 단독 입찰하며 유찰됐다. 총 2698가구로 재건축되는 해당 사업의 총공사비는 1조5000억원 규모다.

올 초부터 정비사업 단독 입찰이 반복됐다.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신반포4차 재건축도 시공사 입찰에 삼성물산만 참여해 경쟁이 성사되지 않았다. 재공고에도 삼성물산만 참여해 유찰됐고 조합은 수의계약을 결정했다. 신반포4차 재건축은 잠원동 70번지 일대 9만2000여㎡ 부지에 지하 3층~지상 48층 7개 동 1828가구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공사비는 약 1조310억원이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수의계약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공사비가 상승하고 재건축 수익이 줄어 건설사들은 경쟁을 통한 출혈을 피하고 있다"며 "건설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설 원가율 94%… 공사비 부담에 '선택과 집중'
사진은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사진=뉴스1
공사비 상승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비 지수는 2020년 이후 30% 가까이 상승했다. 2020년 공사비 지수를 100 기준으로 산정시 2022년 125.33, 2024년 9월 130.45로 상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업체들의 원가율도 90% 이상으로 치솟았다. 원가율은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한 비중으로 원가율이 상승하면 수익이 낮아진다. 지난해 업계 1위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제외한 10대 건설사의 공사 원가율은 평균 94.06%로 나타났다. 통상 적정 원가율은 80% 이하가 안정적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기준이다.

이러한 기조가 부동산 시장의 지역 양극화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ALL100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위원은 "대형 건설사들이 실적 하락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안정적인 지역 위주로만 수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건설경기 회복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수의계약 방식이 확산되면 공사비 적정성이나 시공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경쟁입찰이 아닌 구조에선 조합의 공사비 협상력이 약화돼 적정 여부와 공사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공사를 구하지 못한 조합들의 고민은 더욱 커질 예정이다. 총사업비 8470억원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4가 도시환경정비구역은 시공사 선정에 입찰사가 없어 유찰됐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도 2023년 GS건설과 계약을 해지 후 현재까지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수의계약 조건이 아쉽기는 해도 하루라도 빨리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이 사업 지연과 사업비 증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