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한진칼과 LS의 동맹을 지적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진빌딩. /사진=머니투데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한진칼이 LS와 자사주를 활용한 동맹 관계를 구축한 것에 대해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19일 거버넌스포럼은 'LS 자사주 처분, 한진칼 자사주 출연은 주주이익 침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두 회사가 지배권 방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고 목소리를 냈다. 거버넌스포럼은 "한진칼과 LS가 겉으로는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2일 호반건설은 기존 17.44%였던 한진칼 보유 지분을 18.46%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최대 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19.96%)과 2대 주주 간 지분 차이는 약 1.5%포인트(p)로 격차가 좁혀졌다. 이런 점 때문에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적대적 M&A(인수합병)를 시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지난 12일 8만920원이던 한진칼 주가는 14일 15만600원까지 올랐고 이후 19일 기준 11만4700원까지 하락했다. 경영권 분쟁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여서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 산업은행(10.58%)은 한진칼 지분 30.54%를 보유 중이다. 여기에 대한항공과 JV(조인트벤처)를 운영 중인 미국 델타항공(14.9%)이 힘을 보태며 확실한 우군을 자처하고 있다.

한진칼은 지난 15일 자기주식 0.66%(약 663억원)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고 공시했다. 이후 지난 16일 LS는 채무상환을 위해 한진칼 자회사인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이를 인수해 LS 주식 38만7365주(전체 발행주식의 1.2%)로 바꿀 수 있다. 이 경우 조 회장 및 특수관계자 지분은 20.79%까지 늘어난다.


이에 거버넌스포럼은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삼자 매각 시 의결권이 부활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LS도 교환사채 발행으로 대한항공이라는 우군을 확보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LS가 한진칼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 '백기사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거버넌스포럼은 "LS와 한진그룹은 지난 4월 동반 성장과 주주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사업 협력 및 협업 강화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지만 양사는 불행히도 지난주 주주가치를 침해하는 의사결정을 연이어 발표했다"며 "자사주를 우군에게 매각해 지배권을 굳히는 것은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애플과 구글, 애플과 TSMC, 엔비디아와 TSMC는 수 십년 동안 긴밀한 협업관계를 유지했지만 상호주를 보유하지 않았다"며 "협업은 자본거래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배권 방어는 높은 주가와 높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는 정공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출연은 그동안 많은 상장사가 악용해 온 지배권 방어 목적의 기부행위와 같은 취지"라며 "자사주 처분은 유상증자와 같은 성질인데 기부는 주식을 무상으로 공여하는 셈으로 오히려 현금 출연이 나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거버넌스포럼은 한진칼 이사회와 김석동 의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거버넌스포럼은 "이번 자사주 출연이 이사회 심의 의안대로 지배권 분쟁과 무관하며 순수하게 복리후생을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정말 맞는가"라고 반문하며 "사외이사들은 독립적 판단하에 주주가치 영향을 재검토해야 하길 권한다"고 했다.

LS에 대해서는 밸류업 계획 발표와 보유 자사주 15%(485만 주)에 대한 소각을 요구했다. 거버넌스포럼은 "소각과 즉시 기존주주 가치가 18% 증가한다"며 "자사주가 금고주의 형태로 장부에 남아있으면 대규모 주가 디스카운트 요소"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거버넌스포럼은 새로운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다. 미국의 행동주의가 한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뚫지 못한다고 판단, 긴 호흡으로 목소리를 낸다. 포럼 주요 회원은 자산운용사 대표들로 구성됐는데 2020년 사단법인으로 설립 허가를 받았다. 현재 포럼을 이끄는 이남우 회장은 과거 삼성증권 리서치 센터장, 메릴린치, 노무라증권 등을 거친 전문가다.

주요 회원사 중엔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가 있다. KCGI는 과거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호반건설과 손잡고 조원태 회장이 쥔 한진칼 경영권을 노리며 피말리는 분쟁을 벌인 적이 있다. 2021년 KCGI 측은 완패했고, 2022년엔 보유 지분 17.41%를 호반건설에 넘겼다. 당시 "투자 회수 여건이 성립했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KCGI와 함께 한진칼을 흔들던 호반그룹은 올 초 LS그룹의 지분 매입으로 경영권 분쟁 논란을 겪으며 관심을 모았었다. 호반산업이 올해 초 지주회사 ㈜LS 지분 3% 이상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지분 5% 미만이어서 공시 대상은 아니지만 장부 열람 청구권과 이사의 위법 행위 유지 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LS그룹은 범 LG가가 우호 세력을 탄탄히 형성한 만큼 한진칼과 마찬가지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