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에서는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며 재활용이 어려운 우유팩과 병뚜껑, 커피 찌꺼기 등을 수거한다. 사진은 리필스테이션에서 손님이 세제를 담고있는 모습. /사진=남동주 기자
플라스틱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사람은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매년 6월5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주제를 선정하고 대륙별로 한 국가를 지정해 공식 기념행사를 연다. 올해는 1997년 이후 28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행사가 열렸다. 장소는 제주였다.


올해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BeatPlasticPollution)이었다. 한때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불렸던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오염원이 됐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4억6000만톤(t)에 달했다. 현재 추세로면 2060년에는 12억t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7㎏으로 세계 상위권이다.

플라스틱의 문제는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토양·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 온실가스,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해 환경은 물론 인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거대한 문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제로웨이스트'에 기자가 직접 도전했다. 3일 동안 일상에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줄여보려 했다. 결과적으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도전이었다.


제로웨이스트 도전 첫날 거창한 다짐보다 실천 가능한 몇 가지부터 시작했다. 텀블러를 챙기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 쓴 용기를 닦아 들었다. 그러나 3일간 마주한 현실은 친환경 실천이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환경에 보탬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해."
서울 마포구 제로웨이스트 상점에는 여러 생필품을 팔고 있다. 사진은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손님. /사진=남동주 기자
"같이 사는 지구인데 함께 실천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환경의 날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찾은 서슬기씨(33)는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에코백에 재사용 용기를 가지고 생필품을 리필하러 왔다. 재활용이 어려운 우유 팩과 커피 찌꺼기 등을 수거하는 이 상점엔 시민들이 다 쓴 용기를 들고 모인다. 세제, 샴푸, 반려동물 사료까지 원하는 만큼 덜어 담는다.

이곳을 3년째 찾고 있다는 A씨(38·여)는 "환경에 보탬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며 "자주는 못 오지만 우유 팩 반납할 겸 필요한 걸 사러 들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리병에 세제를 담았고 비누는 포장 없이 구매했다.
"물가가 오를수록 여기 오는 것이 이득인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물품은 전체적으로 저렴하다. 사진은 해당 매장에서 판매하는 무포장 비누(왼쪽)와재생지로 만든 노트. /사진=남동주 기자
경제적인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상점을 찾은 박민수씨(30)는 "요즘 물가가 오르는데 여기는 가격이 저렴하다"며 "생필품의 단가가 낮고필요한 만큼만 덜어 쓸 수 있어 낭비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혼자 살다 보니 바쁠 때 배달을 시켜 먹는데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며 "배달 업체에 다회용기 요청은 어렵고 매번 쌓이는 일회용품을 바라보면 마음이 무겁다"고 토로했다.

A씨는 "쓴 용기를 씻고 말리고, 다시 들고 나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롭다"며 제로웨이스트를 실전에서 실천하기에는 번거로움이 따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씨는 "봉투를 주겠다고 해도 안 받고 손에 들고 오거나 용기를 들고 다니는데 이런 습관이 쌓이면 의미 있는 행동이 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상점은 찾은 사람들에게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만족감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공통으로 실천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용기 챙겨 시장에 갔지만 좌절했던 사연
전통시장에서도 제로웨이스트를 향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사진은 이미 일회용품으로 포장된 야채(왼쪽)와 포장되지 않은 야채. /사진=남동주 기자
용기를 챙겨 시장으로 향했다. 전통시장 내 반찬 가게와 채소 코너에서도 불편함은 이어졌다. 반찬은 이미 일회용기에 담겨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채소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예쁘고 신선해 보이는 상품은 포장돼 있었다. 일부 상인은 "용기를 가져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며 "비닐에 담지 말라는 요구도 드물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사진은 일회용품에 담긴 반찬(왼쪽)과 떡. /사진=남동주 기자
둘째 날과 셋째 날 기자의 도전에서도 제로웨이스트를 향한 현실의 벽은 높았다. 떡집과 아이스크림, 도시락 가게에서도 실패는 계속됐다. 가져간 통에 떡을 담아달라는 요청에 점원은 "이미 전부 포장돼있어 어렵다"고 답했다. 다른 곳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도시락 가게에서도 "통에 담아줄 수는 있지만 이미 포장된 도시락을 해체해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는 용기 사용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점원은 "매출은 해당 일자에 소진된 일회용 컵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손님 용기에 담아드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회용기를 받지 않으려던 시도는 막혔다.

실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개인의 실천 고민은 이 사회가 제로웨이스트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확대됐다.
같이 한다는 감각… 지속 가능성의 열쇠
마포구 소재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서 근무 중인 성예람 매니저(27)는 "손님들이 다 쓴 용기를 깨끗이 씻고 반복적으로 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성 매니저는 매장에서 일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에 대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처음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지만 같은 고민을 나누고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 자체가 큰 힘이 된다"며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공간은 여전히 도시 내 소수다. 대부분 상점은 여전히 편리함과 일회용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다. 그간 제로웨이스트는 개인의 실천으로만 강조됐지만 실질적 변화를 위해선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덜어내는 삶은 결국 '함께 사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3일간의 체험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장바구니를 쓰고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해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일회용기 하나쯤은 받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