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광교 호수공원에는 특별한 복장을 한 많은 이들이 모였다. 생명의 전화가 주관한 청소년 자살 예방 캠페인 '함께GO워크' 행사로, 참가자들은 7.9Km를 걸었다.

왜 하필 7.9Km일까? 그 숫자는 단순한 거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인구 10만 명당 7.9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너무도 아픈 현실에서 비롯된 숫자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오랫동안 안고 있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더욱 심각하다. 이 수치는 단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경고하는 지표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청년은 미래를 먹고 사는 존재다. 가능성과 도전, 상상과 희망이 청춘의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청년들은 '꿈꿀 수 없음'에 지쳐 있다. 방향을 잃은 채, 경쟁과 절망 사이에서 고립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신을 잘 받지 못하면 수시제도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예 자퇴를 선택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1학년 때 실수 하나가 인생을 결정짓는 구조. 실패는커녕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과도한 학습시간, 성적 경쟁에 얽힌 환경에서 청소년 행복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청소년 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트레스 인지율 37.3%, 우울감 경험률 26% 등 정신건강 지표는 붕괴 수준에 가깝다.


국제 비교는 더욱 처참하다. 유니세프 이노첸티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기초학력은 40개국 중 1위지만, 정신 건강은 36개국 중 34위, 신체 건강은 28위, 전반적인 아동 복지 순위는 27위에 불과하다.

공부는 잘하지만 살고 싶지 않은 나라. 희망 없는 우등생만 양산하는 사회.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자살률 1위, 청소년 무기력 상위권인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도, 선진국 진입도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낮은 경제성장률과 신산업의 정체는 청년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2024년 이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떨어졌고, 신기술 기반의 산업 생태계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기성세대는 과거의 성공 경험을 말하지만, 청소년들은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서 먹고 살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AI·로봇·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데, 그 변화에 걸맞은 교육·일자리·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낡은 산업시대의 틀에 갇혀 있다.

청소년들은 단지 '좋은 대학'을 넘어서 '좋은 미래 일자리'를 묻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뚜렷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청소년에게 희망이 없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이 단순한 진실을 정치와 사회는 너무도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에 바란다. 우리 청소년에게 더 많은 출발선, 더 두터운 사다리,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수시, 정시, 진학률 같은 단기 성과에 매몰된 교육이 아니라, 청년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청소년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청소년이 꿈꿀 수 있어야 국가가 전진한다. 이제는 말이 아닌, 실질적인 희망을 돌려줄 시간이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