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단순한 자산 축적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투자'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연금 수령 문화가 정착되는 한편 실적배당형 상품 선호가 확산되며 수익률도 크게 개선되는 흐름이다. 원리금보장 중심의 '안전한 저축'에서 벗어나 TDF(타깃데이트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 등을 활용한 '실적배당형 투자'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이 고용노동부와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으로 사상 첫 400조원을 돌파했다. 전년(382조4000억원) 대비 12.9% 증가한 수치다.


퇴직연금 자산의 운용 방식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전체 적립금의 82.6%가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이지만 실적배당형 자산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2024년 말 기준 실적배당형 운용 자산은 75조2000억원으로 전년(49조1000억원)보다 무려 53.3% 급증했다. 전체 자산 중 비중은 17.4%로 상승했다.

특히 실적배당형 상품 중에서는 TDF가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으며 ETF는 미국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수익률은 실적배당형이 단연 우수했다. 2024년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은 4.77%를 기록했지만, 유형별로 보면 원리금보장형은 3.67%, 실적배당형은 9.96%에 달했다.
금융사 권역별 수익률도 차이를 보였다. 적립금 규모는 은행(52.3%)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수익률에서는 증권사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증권사 IRP 계좌의 상위 10% 가입자는 평균 92%를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하며 10% 초과 수익률을 낸 비중도 31.7%에 달했다. 반면 은행과 보험 가입자의 대부분은 4% 이하 수익률 구간에 머물렀다.


제도유형별로는 DB형(확정급여형)이 214조6000억원으로 전체의 49.7%를 차지하며 가장 컸지만, DC형(118조4,000억원, 27.4%)과 개인형 IRP(98조7,000억원, 22.9%)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익률 역시 IRP(5.86%)와 DC형(5.18%)이 DB형(4.04%)을 앞섰다.

퇴직급여 수령 방식도 변하고 있다. 2024년 처음으로 연금 수령액(10조9,000억원)이 일시금보다 많아졌으며, 전체 수급 계좌 중 13%가 연금 수령을 선택했다. 연금 수령자 1인당 평균 금액은 1억4694만원으로 일시금 수령자의 평균(1654만원)보다 8.9배 많았다.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수익률 개선과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정부와 금융당국도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투자 활성화를 위해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개시 ▲핀테크 기반 로보어드바이저(RA) 활용 투자일임 허용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핀테크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을 퇴직연금 혁신사업자로 지정하고 이들이 퇴직연금사업자와 제휴해 개인형IRP 계좌에 대한 투자일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알고리즘 기반 자문 서비스를 통해 더 정교한 포트폴리오 운용이 가능해지도록 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형 상품 중심의 퇴직연금 활성화를 통해 노후 자산의 실질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