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혁 넷마블 의장. /그래픽=김은옥 기자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확산하겠다며 박물관을 개관한 넷마블이 사옥을 매각하면서 진정성 논란에 빠졌다. 게임산업 및 문화를 재조명하겠다는 포부와 달리 자사 건물이 아닌 임대 공간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게임업계 최초 박물관이라는 상징성도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넷마블문화재단은 지난 3월4일 '넷마블게임박물관'을 구로 지타워 3층에 정식 개관했다. 2021년부터 준비된 넷마블게임박물관은 작년 12월 완공돼 게임의 역사부터 제작 과정, 문화 콘텐츠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전시 공간, 학습 공간, 놀이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게임의 산업·기술·문화 측면을 통섭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소장품은 총 2100여점으로 초기 콘솔 게임기부터 최신 게임 기기 300여점, 게임 소프트웨어 1300여점, 주변기기 및 기타 소장품 500여점이다. 이 중 700여점은 시민과 사내 기증을 통해 수집됐고 주요 전시품으로는 '오디세이(1972)', '가정용 퐁(1976)', '애플2(1977)', '재믹스(1987)', '겜보이(1989)' 등이 있다. 2023년 하반기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더 많은 역사적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1년 정도 일정을 미뤘다.

이는 넷마블문화재단이 추진해온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의 역사와 가치를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게임 문화 전시 공간이다. 제주시 노형동에 넥슨의 '컴퓨터박물관'이 있지만 게임에 더욱 중점을 둔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중 게임 문화적 가치 확산에 실질적 움직임을 보인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컴퓨터박물관이 제주시에 있어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넷마블게임박물관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게임박물관의 탄생은 넷마블문화재단 이사장이자 넷마블의 창업주인 방준혁 이사회 의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방 의장은 그동안 건강한 게임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장애학생들의 여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2008년 특수학교 내 31개소의 '게임문화체험관'을 열었고 이듬해 '장애학생 e페스티벌'을 시작했다. 2014년 청소년을 위한 '넷마블견학프로그램'을, 2년 뒤 '넷마블 게임아카데미'를 제공하면서 청소년들이 게임 개발 과정을 접할 수 있도록 힘썼다.
어렵게 세운 넷마블게임박물관… 지타워 매각에 상징성 퇴색
김성철 넷마블문화재단 대표가 지난 4월 넷마블게임박물관 개관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양진원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한국표준질병분류(KCD) 등재 논의는 게임을 여전히 나쁜 오락으로 보는 인식을 반영한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방 의장의 묵묵한 발걸음은 귀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물관 개관 한 달여 만에 넷마블의 구로 지타워 매각설이 번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지난 4월 지타워 매각 주관사를 선정하기 위해 입찰제안요청서(REP)를 부동산 거래 자문사들에게 발송하는 등 관련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박물관이 위치한 지타워는 2021년 준공됐으며 넷마블 본사와 넷마블에프엔씨, 넷마블네오, 코웨이 등 넷마블 그룹 관계사들이 입주해있다. 매각가는 7000~8000억원대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넷마블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게임업계는 재무구조 개선이 배경이라고 본다. 넷마블의 2025년 1분기 연결 기준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유동자산은 1조910억원, 유동부채는 1조5267억원으로 유동비율이 약 71.5%에 불과하다. 통상 유동비율이 130%를 넘으면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데 넷마블은 절반 수준인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현금성 자산보다 단기차입금이 많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933억원, 단기차입금은 6073억원으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속에 자산 유동화를 통해 재무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향후 과천에 완공될 신사옥으로의 이전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시각이 많다.

게임박물관의 상징성과 메시지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준혁 이사장의 의지로 세워진 넷마블게임박물관은 게임은 문화이자 미래 산업이라는 철학을 시각화한 공간으로 평가받았다. 넷마블이 이 공간을 더 이상 자사 사옥이 아닌 임대 건물에서 운영하게 될 경우 예산 운용에서 압박을 받게 되고 박물관의 무게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물관 운영이 형식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방 의장은 과거 넷마블문화재단 설립 기념식에서 "글로벌 게임회사로 성장하고 있는 넷마블은 보다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임직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옥 내에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과 외부 건물에 전시를 임대해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메시지 전달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기업의 철학을 실현하는 공간인 만큼 단순한 수치적 경영 판단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