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 설비 통폐합을 논의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폐합 운영을 추진한다. 계속되는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 등의 영향으로 장기 침체에 빠진 상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는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 설비 통폐합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두 회사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단 입장이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양사는 HD현대 자회사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 롯데케미칼이 지분 40%를 보유한 NCC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대산단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대산단지 내 단독으로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케미칼로 넘긴 뒤, HD현대오일뱅크가 이에 맞춰 추가 출자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번 논의는 업계의 전반적인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됐다. 범용 중심 생산체계가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의 자급률 확대 등과 겹치면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단 지적이다. NCC 위주의 대량 생산 체계를 축소해야 한다는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업황난이 길어지면서 국내 업체들도 실적 악화에 시달려왔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지난해 1조8255억원, 2837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하는 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설비 통폐합을 기점으로 시설 관리비·인건비·기타 간접비 등이 줄어들 전망이다. 중복 인력을 축소하고 각종 설비와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해 운영 효율을 높일 거란 관측이다. 생산량, 출고 시점 등을 유연하게 조정해 시장 내 출혈경쟁도 완화할 수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 표류해왔던 설비 통폐합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대산과 여수에 위치한 설비의 통폐합 방안을 두고 논의를 진행했다. LG화학은 HD현대에도 공장 매각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에틸렌 설비 증설 등 외부 리스크가 지속해서 커지는 만큼 통폐합 시기를 미루기는 힘들 거란 예상이다.

석화업계와 관련한 공약을 내세웠던 이재명 대통령이 구체적 지원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별 지역 맞춤형 '우리동네 공약' 중 여수시 맞춤 공약을 통해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회복 적극 지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석유화학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정부 주도 구조개편을 실현하고, 연구개발(R&D)과 친환경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진영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는 "두 회사의 설비 통폐합을 계기로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의 저가공세 등 글로벌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통폐합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통폐합 과정에서 발생한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정부 차원의 경제적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