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6월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당시 이팔국 토막살인 사건 기사 페이지. /사진=유튜브 채널 '사건의뢰' 캡처
1975년 6월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48세 남성 이팔국으로 피해자인 아내 이숙자(43)와 부부싸움 도중 격분해 목을 졸라 그녀를 살해한 뒤 범행 은폐를 위해 5시간에 걸쳐 시체를 훼손했다. 이후 가족에겐 아내가 가출했다고 둘러댔다. 그러던 중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한 동네 골목에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다 살해당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사건은 수면위로 드러났다.
사건의 전말
1975년 6월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살인범 이팔국의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케이론J 캡처
1928년 경북 영천군에서 태어난 이팔국은 피해자 이숙자를 만나기 전 1958년 전처와 결혼해 4남매를 뒀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1969년 전처가 사망한 후 가정부 성폭행, 사기, 폭력 등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변변치 않게 살아왔다.


그런 와중에 이팔국은 1973년 다방과 양장점을 경영하던 이숙자를 만났다. 이팔국은 다방을 들락거리며 이숙자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사업 자금으로 쓰라고 돈을 쥐여주면서 환심을 산 끝에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실직 상태였던 이팔국은 이숙자에게 빌붙었고 4남매와 살림마저 그녀에게 떠넘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팔국은 이숙자의 재산을 노리고 동의 없이 몰래 혼인신고를 하기도 했다. 결국 다툼이 늘자 이숙자는 이혼을 요구했고 이팔국은 그녀를 살해하고 유기했다.

경찰은 이팔국과 전처 사이에서 난 자녀들을 소환해 대질심문을 벌였다. 그의 자녀들은 "20일 오전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후 조용해졌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침에 일어나니 집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 아빠에게 물어보니 '벌레가 끓어서 그런거다. 소독을 했다'고 말했다"며 증언했다.


경찰은 국과수 의뢰를 통해 쓰레기 봉투 속 사체가 이숙자의 신체 일부로 밝혀지자 6월28일 이팔국을 검거했다.
1975년 6월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살인범 이팔국이 범행에 사용한 흉기. /사진=유튜브 채널 케이론J 캡처
희대의 살인자 이팔국의 최후
1975년 6월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살인범 이팔국이 당시 범행 상황을 수사관들 및 취재진 앞에 재연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 캡처
경찰의 추궁에 결국 그는 자백했고 해당 사건은 서울형사지방법원에 배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우발적이었지만 그 뒷과정에서 사체를 훼손하는 등 지극히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인명을 천시해 피고인의 행위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밝히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이팔국은 변호사를 통해 기억상실 등 심실 상실 상태와 6·25 부상으로 인한 정신착란증 등을 주장하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 및 상고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 모두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팔국은 사형 전날까지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결국 사건 발생 2년6개월 만인 1977년 11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