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추진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중동 정세에 따른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연료비 비중이 높은 항공·해운 업계의 원가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사진=뉴스1
이란이 미국의 핵시설 공습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추진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될 경우 매출 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항공·해운업계의 수익성에 타격이 예상된다.

최근 이란 의회는 자국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해협 차단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 원유 운송이 마비,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23일 오전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3.36% 오른 배럴당 76.32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8월물은 3.27% 상승한 79.49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배럴당 70달러 선인 국제유가가 최대 130달러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항공·해운업계는 연료비 상승 압박에 직면했다. 항공사의 경우 유류비가 운항 비용의 30~35%를 차지하는데 항공유 가격이 5% 오르면 영업이익률은 1%포인트(p)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상승할 때마다 약 430억 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유류할증료도 다시 상승할 전망이다. 항공업계는 최근 넉 달 연속 유류할증료를 인하해 왔다. 7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3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중동 정세 악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면서 8월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류할증료는 국제 유가(싱가포르 항공유 기준) 변동에 따라 항공사가 운임에 부과하는 추가 요금으로 통상 유가 변동에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유류비 상승분이 항공권 요금에 반영되면 승객들의 체감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노선 운항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텔아비브 노선을 운항하던 대한항공은 지난 2023년 10월 홍해 사태 이후 해당 노선을 중단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현재 운항 중인 중동·아프리카 노선이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선은 안전한 항로 위주로 재편돼 중동 갈등이 타 노선 운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8월 유류할증료는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원유를 운송하는 탱커선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해운업계도 비용 부담을 안게 됐다. 해운사 매출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5%다. HMM은 지난해 선박 연료 매입액으로만 1조4420억원을 지불했다.

연료비와 함께 보험료도 상승할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세계 최대 보험사 아시앤드맥레런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등 걸프 지역을 지나는 일부 선박 보험료율이 0.125%에서 0.2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억원 이상 증가한 수준으로 향후 보험료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운항 차질은 선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원유를 운송하는 탱커선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반면, 컨테이너선은 비교적 영향이 덜하다. 중동 컨테이너 노선은 미·중 등 주요 항로에 비해 물동량이 적고 대체 항만 등의 대안이 있어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은 항로가 막히더라도 육상 운송 등 대체 수단이 있지만 30만 톤 이상을 운반하는 유조선은 육상으로 운송할 방법 자체가 없다"며 "해협 봉쇄 시 사실상 발이 묶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우회 노선 이용으로 해상 운임이 상승할 경우 수익성 타격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으로 수송로가 마비되자 글로벌 해상 운임이 급등한 바 있다. 현재 국내 일부 해운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비해 우회 노선과 대체 항만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